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17화 [착호갑사 6]

kaether 2023. 7. 2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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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17화 [착호갑사 6]


동굴안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일반 사람들과 궤를 달리하는 이질적인 기운으로 인해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사나운 범들도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의 앞에 있는 것은 자신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다 죽여 버릴거야!”

 

소년의 입에서 내뱉어진 섬뜩한 말과 함께 소년의 주위로 검은 형체들이 튀어 나왔다.

 

-크와와왕-

 

소년에게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들은 범과 같은 생김새를 띄며 범들을 사정없이 물어 뜯기 시작했다. 포식자에서 사냥감 신세로 전락한 범들은 괴성을 지르며 혼비백산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채로운 피륙음들은 그 날렵했던 범들 조차 미처 대처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범들을 찢어 발기며 주변을 피로 물들여 나가기 시작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턱이 없는 일행들은 그저 기적이라고 만 생각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장 이게 어찌 된 상황입니까!”
“나도 모르겠다! 일단은 동굴을 빠져 나간 다음에 애기 하도록 하자!”

 

착호장은 이 기회를 틈타 소년을 들쳐 업고 동굴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렇지만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이 일행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심마저 들게하는 소년의 기운앞에 일행들은 한 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소년이 향하는 증오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빗겨 가기를 바라며

 

 

-터벅 터벅-

 

돌처럼 굳어 버린 일행들을 뒤로하고 소년은 거대한 범에게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년의 안구는 그림자가 드리워 진 듯 검게 물들어 있었다. 소년의 몸은 비록 평범한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지라도 소년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은 마치 악마와도 같아 보였다.

 

다른 범들보다도 유난히 많은 수의 그림자 들이 달라 붙은 거대한 범앞에 다가선 소년은 팔을 높이 치켜 올렸다.

 

-휙-

 

소년이 팔을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가 거대한 범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에서 날아 들어온 그림자는 곧 거미줄처럼 거대한 범의 온몸을 단단히 옥죄며 조여 왔다.

 

-크와아아아-

 

범은 괴로운 듯 날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거세게 저항해보지만 이내 가냘픈 소리를 내며 저항이 잦아 들었다.

 

-크..르르르-

 

거대한 범의 몸통을 다 덮은 그림자는 이내 범을 갈기갈기 공중으로 찢어 발겼다.

 

-피잇-

 

허공에 흩뿌려지는 범의 사채를 신호로 다른 범들의 사채 역시 연쇄적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생물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범들의 사채들이 바닥 여기저기를 나뒹굴며 하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붉은 핏방울이 내렸다.

 

“으아아아아”

 

피로 물든 동굴안에 소년의 목소리가 메아리 쳤다. 소년의 주위로 피어오른 날카로운 그림자들이 더 이상 생물이라고 할 수없는 사채들을 향해 다시 도륙하기 시작했다. 이질적인 그림자들로 인해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쾅 콰아앙-

 

소년의 힘에 의해 동굴이 무너지려는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고, 천장에서는 조그만 파편들 부터 시작해 부피가 꽤 있는 바위 덩어리까지 차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일행들은 소년을 말리려 했으나, 소년에게 일렁이는 그림자에 가로막혀 소년에게는 도저히 다가 갈 수가 없었다.

 

노승은 소년을 불렀지만 소년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보였다.

 

“은휼아 그만 하거라! 그쯤이면 됐다! 범은 이미 죽었다.”

 

-쿠쿵쿠쿵-

 

동굴이 흔들리며 천장에서 우수수 바위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일행들 역시 위기를 직감했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쿠쿠쿠쿵-

 

“그만 하거라! 은휼아~”

 

노승의 외침과 동시에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동굴에는 암전이 찾아왔다.


“장군 님이 죽었어”
“장군 님은 무슨! 정신 안 차릴래?”
“우리 이제 해방 된 거야?”
“저 소년이 우리의 원한을 풀어줬어!”

 

정신을 잃은 소년의 귓가에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소년이 묻자 이내 한 남자가 소년의 앞에 나타났다.

 

“꼬마 착호갑사!”


익숙한 목소리의 남자는 소년에게 목걸이를 준 착호갑사였다.

 

“어? 사수 아저씨!”


소년은 남자를 반갑게 맞았다.

 

“꼬마 착호갑사! 고마워 덕분이야!”


남자는 소년을 보며 밝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자의 말에 당황한 소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그건 무슨 소리죠? 제 덕분이라니..요?”
“너 가 범에게서 우리를 구해 줬잖니 기억 안 나?”
“기억이요?”


남자의 말에 소년은 아까 분노했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소년은 기억이 안 나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고…”
“덕분이야! 고맙다!”


남자는 진심으로 소년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소년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소년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맞어 꼬마야 다 너 덕분이야!”
“이야 그 요망한 범을 잡다니 대단한걸!”
“꼬마야 고맙다!”

 

사람들의 감사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범에게 희생된 착호갑사 들을 향한 참회의 고백이었다.

 

“아니예요. 아저씨! 저는 착호갑사가 될 자격이 없나봐요!”
“그건 무슨 소리니?”
“저는 다른 착호갑사 아저씨들처럼 용맹하지 못했어요! 범이 표효를 하면 다리가 떨려 제대로 서있을 수 도 없었던 걸요!”

 

소년은 당시 심정을 침울해하며 말했다. 남자는 의기 소침해진 소년의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목걸이는 마음에 드니?”
“목걸이요?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아저씨!”

 

목걸이 애기를 하자 소년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 목걸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란다!”

 

남자의 말에 소년은 뜨끔해 하며 목걸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이거는.. 그럼 누가 할 수 있는 거죠?”

 

소년은 불안해 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보자 남자는 말했다.

 

“그거야 바로 가장 용맹한 착호갑사 만이 할 수 있지!”
“그럼 저는 자격이 없는 거네요..”

 

소년이 침울해 하며 대답하자 남자는 소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소년의 눈높이에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 이 목걸이는 네가 틀림없는 착호갑사라는 증표란다. 내가 보증하지! 사람이 범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인가? 누구나 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존재 한단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한 자만이 범을 잡을 수 있지! 착호갑사라는 것은 그런 용맹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범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일행들 곁을 지켜주며 두렵지만 범을 쫓아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막는 그런 용기 있는 자 말이다!”
“저도 그런 멋진 착호갑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럼 물론이지!”

 

남자의 말에 용기를 얻은 소년이 대답했다.

 

“저도 그런 착호갑사가 될거예요!”
“그럼! 그렇게 나와야 용감한 착호갑사 답지!”
“맞아요! 저는 착호갑사니까요!”

 

기운을 차린 소년을 보며 남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동료들에게 가 보거라 걱정하고 있을테니”

 

남자는 말을 끝맺으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아저씨…”
“은휼아! 괜찮은게냐!”


노승은 소년을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이내 의식을 되찾은 소년은 어지러운 기새을 비추며 대꾸했다.

 

“으으.. 스님! 저는 괜찮아요!”

 

노승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이구나!”
“그것보다 여긴..”

 

소년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피워진 작은 횃불 하나가 소년의 시야에 들어 왔다. 횃불 주변에는 바위를 치우고 있는 착호갑사들이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소년은 노승에게 물었다.

 

“스님! 저희는 어떻게 된 것이죠? 죽은 건가요?”

 

노승은 담담하게 답했다.

 

“죽기는 누가 죽었다고 그러느냐! 그냥 동굴에 갇혔을 뿐이란다.”

 

그때 착호장이 소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일어 났구나! 몸은 괜찮은 것이냐!”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착호장에게 물었다.

 

“네..그것보다 저희는 왜 이런 곳에..”
“지금 출구를 찾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출구요?”
“그래 동굴이 무너져 내려 입구가 막혀버렸구나!”

 

착호장에 말에 소년은 아까의 어렴풋한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저 때문에…”

 

그때 바위를 치우고 있던 일행들이 착호장을 불렀다.

 

“대장! 여기서 바람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


일행의 부름에 황급히 달려간 착호장은 바위에 생긴 틈으로 나오는 바람을 느꼈다.

 

“여기다!”

 

출구를 향해 일행들은 힘을 합쳐 바위와 돌멩이를 치우기 시작했다. 동굴에 갖힌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들을 돕고 있던 소년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꼬마야 너는 힘들면 쉬고 있거라!”

 

남자는 소년을 걱정하며 말했지만 소년은 씩씩하게 그에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도울게요!”

 

그들은 이곳에서 나가겠다는 희망을 품으며 열심히 출구를 팠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이틀 째 되던 때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을 파고 있던 남자가 소리쳤다.

 

“이러다가 여기서 굶어 죽겠다!”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말하자 옆에 있던 남자도 거들었다.

 

“이러다가 우리 여기서 다 죽는거 아냐..”

 

그러자 그들을 보며 착호장이 호통을 치며 말했다.

 

“약한 소리 하지 말거라!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럴 기운 있으면 돌멩이 하나라도 더 옮기거라!”
“아니 대장 이틀 째 죽어라 고생만 하고 출구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말도 못합니까!”

 

남자는 답답했는지 착호장에게 대꾸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지쳐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몇 일 째 제대로 잠도 못 자며 돌멩이들만 옮겨 댔으니 평소보다도 예민해졌을 것이다.

 

“아니… 이놈이..”


남자의 대꾸에 착호장이 화를 내려던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물이다!”


다른 착호갑사 일행이 좁은 바위틈에 손을 넣고는 소리치고 있었다. 바위틈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인지 남자의 손에는 물이 한 움큼 담겨있었다.

 

-후루룩-


남자는 얼마 안되는 손에 담긴 물을 빨아들이듯이 삼켰다.

 

“크 ~ 아! 시원하다!”


남자는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러자 다른 일행들도 모여들며 바위틈에 손을 넣어 너도 나도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으아 ~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러게 목말라 죽는 줄 알았네!”

 

그 순간 동굴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바닥이 점점 심하게 울리자 설상가상 동굴 천장에서도 돌멩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어 대장! 이러다가 또 무너지는 거 아니예요?”

 

이미 한번 동굴이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일행들은 불안했다. 이 좁은 곳에서 또한번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가는 필시 자신들은 살아 남지 못 할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진정해라! 괜히 호들갑 떨지 말고…”

 

일행들을 진정시키는 착호장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바닥이 결국 푹 꺼져버렸다.

 

-으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