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년 16화 [착호갑사 5]
소년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커흥-
사지를 떨리게 하는 날카롭고 사나운 포효 소리!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 소리가 천지를 뒤 울렸던 악몽과도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소년의 기억에 선명히 떠 올랐다. 소년은 무서웠다.
-으아아아-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한 착호갑사의 등에 업혀있었다.
“일어났니?”
화들짝 놀란 소년을 보며 착호갑사 사내가 말을 걸어 왔다.
“네.. 그것보다 여긴..어디죠? 분명 저는 범에게 물려갔었는데..”
“그게.. 설명하자면 길단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난 다음에 애기 하자 꾸나 아가”
착호갑사의 알 수 없는 말에 소년은 더욱 아리송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것 만은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저.. 제가 걸을게요! 저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소년은 답답한지 착호갑사의 등에서 내려오려 안간힘을 쓰자 착호갑사가 못이기는 척 말했다.
“그..그럴래? 괜찮겠니?”
“그럼요 내려 주세요!”
“그럼.. 대신 내 뒤에 딱 붙어 있거라! 이곳은 위험하니 조심하고!”
착호갑사는 소년에게 당부한 뒤 그제서야 소년을 내려 놓았다. 그때 다른 착호갑사의 목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대장! 다 됐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내 착호장은 굳은 결심의 찬 표정으로 일행에게 신호를 보냈다. 착호장의 신호를 시작으로 일행들의 일부는 밧줄을 들고 동굴 깊숙한 곳을 향해 뛰어 가기 시작했다. 아마 착호장의 지시가 있었던 듯 보였다.
착호갑사 일행 중 한 명이 착호장에게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대장! 정말 괜찮겠습니까?”
“걱정 말거라!”
“자칫하면 저희는 독 안에 든 쥐 꼴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건 놈이 원하는 대로 그 속에 빠져 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놈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네? 그게 무슨..”
착호장의 대답에 남자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 했다.
“아니 대장 그러다간…”
그 순간 일행의 앞에 범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먼저 뛰어간 일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주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전열은 평소처럼 신속히 이루어 졌다.
“사수! 선봉대 위치로!”
착호장에 부름에 착호갑사들은 재빠르게 대열을 갖추며 방패를 든 선봉대가 앞을 막아섰다.
“사수!”
착호장에 신호에 사수들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는 범을 향해 쇄내를 당겼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갔지만 정면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범의 머리를 스치며 화살이 빗 맞았다. 원래 범을 사냥할 때는 정면에서 부풀려 보이는 범의 갈기와 달리 범의 머리통은 생각 보다 부피가 적다. 그래서 범에게 쇠내를 겨눌 때는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쏘는 것이 맞추기 유리하다. 그게 정석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선봉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봉대가 다시 대열을 갖추며 방패로 범을 막아섰다.
-커흥-
범은 포효 소리를 내며 육중한 범의 체중을 실은 힘이 선봉대들을 정면으로 덮쳤다.
-으악-
선봉대들이 범의 의해 튕겨져 자빠졌지만 범을 잠시 저지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 덕에 옆에 있던 착호갑사들이 재빨리 범의 목에 밧줄을 걸고 끌어 당겼다.
-크르르릉-
범의 포효 소리가 동굴 안에 울리며 범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어지는 범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셌다.
“측면으로!”
착호장의 부름에 사수들이 범에 측면으로 달려가 쇠내를 당겼다.
-쉭쉭-
화살이 범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배때기와 목에 박히자 범은 더욱 사납게 저항했다. 지금 자신들의 앞에 있는 범은 다른 범들 보다 유난히 가죽이 질겨 보였다. 그렇기에 이 범을 죽이려면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해 보였다.
-크와와왕-
범의 거센 저항에 밧줄을 잡고 있던 착호갑사들도 버거운지 이제는 범의 강력한 저항에 끌려 가기에 이르렀다.
“으.. 안돼! 빨리!”
밧줄을 부여잡고 있는 착호갑사들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휘잉-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착호장의 거대한 창이 범의 뱃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두꺼운 가죽을 뚫고 착호장의 거대한 창의 치명상을 입은 범은 괴로운지 포효했지만 착호장의 창에 배를 깊이 찔린 범은 이내 크르릉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와와왕-
-털석-
쓰러진 범에게서 재빨리 창을 뽑은 착호장은 일행들에게 외쳤다.
-푸욱-
“계속 달린다!”
그렇게 일행들은 처음 소년을 발견한 장소까지 도착했다. 안쪽은 제법 넓었지만 입구는 좁았기 때문에 일행들이 방어하기에는 적합한 공간이었다. 먼저 떠났던 일행들은 입구 주변에 있는 바위에 밧줄을 걸어 입구 주변을 팽팽하게 위아래로 당길 수 있게 묶어 두었다. 착호장이 지시한 조치였다.
그리고는 입구 앞에는 선봉대가 후방에 솟아있는 바위에는 사수들이 쇄내를 겨누고 있었다.
일행은 입구로 범들이 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도 방비라면 재 아무리 사나운 범이라도 뚫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찬 채 말이다.
그리고 이내 범들이 그들이 대기 하고 있는 입구로 사나운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 들어왔다.
“당겨라”
그러자 착호장에 부름에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범은 이내 밧줄에 부딪히며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이내 선봉대에 있던 창수들이 정면에서 달려오는 범의 몸통에 창을 찔러 넣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에서는 사수들이 쇠내를 당겼다.
선봉대와 팽팽하게 당겨 진 밧줄에 의해 저지된 범은 사수들이 맞추기에 손쉬운 표적이었으므로 작전은 성공이었다.
-쉬익 퍽-
입구로 달려들었던 범 한 마리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너무도 쉽게 말이다. 곧이어 다른 범이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입구는 좁았으며 제아무리 재빠른 범이라 할지라도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밧줄을 뚫고 이어지는 창과 화살 세례를 견딜 범은 없어 보였다. 만일 그런 범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해태 정도의 영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 하리라 일행들은 생각했다.
-크와아왕-
입구 주변을 서성거리며 범들이 포효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선뜻 달려 들어오는 범들은 없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리고는 이내 범들도 포기 했는지 이내 사라지고 동굴 안에 정적이 흘렀다.
…
침묵을 깨고 일행이 착호장에게 물었다.
“대장 간 것일까요?”
“영악한 놈 들이다. 방심하지 마라!”
착호장은 다시 한번 일행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때 그 순간 일행 쪽으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대장! 대장! 살려 주세요!”
다가오는 목소리의 정체는 아까 일행들과 같이 있었던 착호갑사였다.
“아니 너는… 살아 있었던 것이냐!”
착호장은 순간 다가오는 남자를 구하고 싶었으나 그에게 풍겨오는 스산한 기운과 생기 없는 얼굴을 보고는 의심스러웠다.
남자는 착호장에게 울부짖는 목소리로 외쳤다.
“살려 주세요 대장!”
“멈춰라!”
착호장이 다가오는 남자를 멈춰 세우자 뒤에 있던 착호갑사 일행이 착호장에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대장! 어서 구해야죠!”
“내가 아까 본 범은 사람의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착호장이 대답하자! 곧이어 다른 착호갑사가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저 녀석은 분명 아까 범에게 물려 죽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러자 이내 그들의 남자의 대한 의심은 더욱 깊어갔다. 남자는 울부짖으며 일행들에게 다시 한번 외쳤다.
“살려 주세요! 대장!”
착호장은 다시 한번 남자를 향해 창을 겨누며 으름장을 놓았다.
“네놈이 범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대장! 저예요 저!”
남자는 다시 한번 애타는 목소리로 착호장에게 말했지만 착호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이름을 말해 보거라! 그렇다면 내 의심을 거두고 너를 구해주겠다.”
착호장은 남자를 향해 외쳤다. 착호장의 부름에 남자는 잠시 멈칫했다.
“네 이놈 어서 말하지 못할까!”
그러자 남자는 이내 입을 열고 말을 이었다.
“공..계..손!”
공계손은 착호장의 이름이었다.
일행들은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자네 살아 있었던 겐가?”
일행이 남자에게 다가가 묻자 남자는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씨익-
그 순간 거대한 범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 일행을 앞발로 후려치며 순식간에 입구까지 뚫고 들어와 일행들을 덮쳤다.
-크와왕앙-
일행들을 재빨리 대응해 보았지만 범은 이미 입구를 뚫고 선봉에 있던 창수 들을 물어 뜯고 있었다.
뒤늦게 착호장이 외쳤지만 거대한 범의 뒤를 이어 다른 범들이 몰려 들어 오기 시작한 뒤였다.
"막아라!"
-크와와왕-
날카로운 포효 소리와 함께 동굴에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살려줘!”
바닥에는 피가 낭자하게 흩어졌다. 속수무책으로 범들에게 당한 일행들의 사지가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한 소년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절벽에서 떨어졌던 그날의 기억이 소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으으으으”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그의 몸이 지금 그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은휼아 정신 차리거라!”
노승만이 소년을 감싸며 외쳤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사나운 범들이 득실대고 있기에 소년의 악몽은 또다시 그의 머릿속에서 상기 되고 있었다.
“으아아아 이놈들!”
착호장이 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한 범의 모가지를 베었지만 범들의 수는 여전히 많아 보였다. 착호장과 함께 노승과 소년 그리고 몇몇의 착호갑사들 만이 살아남아 한쪽 구석으로 내몰렸다.
일행들을 두고 범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 오기 시작했다.
“이거야 원 진짜 독 안에 든 쥐 꼴이 됐구만”
착호장은 허탈하게 말했다. 작전에 실패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식에는 범이 사람의 이름을 알 것이라고 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름을 대라 말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범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자신의 실책을 자책해 보아도 상황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이 비극적인 결말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범이 득실대고 있는 범 무리들을 헤치며 다가왔다.
-크와왕앙 크헝-
거대한 범의 포효 소리가 곧 동굴 전역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자 일행들의 심장도 철썩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행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천천히 벽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범의 포효 소리를 들은 소년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소년은 무서웠다. 지금 소년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에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기억, 산속에서 달빛을 보며 어머니를 기다렸던 기억, 노승을 처음 만났던 기억, 그리고 처음으로 착호갑사에게 선물을 받았던 기억, 소년에게 선물을 줬던 착호갑사는 소년을 이렇게 불렀다.
“꼬마 착호갑사!”…
정신이 나가버린 소년을 보며 노승이 외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는 의중이 있었지만 소년이 조금이라도 살 희망을 높이기 위해 한 조치였다.
“은휼아! 정신 차리거라! 너는 착호갑사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제서야 노승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소년은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일행들을 보며 어슬렁 거리던 거대한 범이 곧이어 일행들을 약 올리듯이 간사한 목소리를 내었다.
“대장,공계손,…… 꼬마 착호갑사…”
…
꼬마 착호갑사! 소년에게 처음으로 목걸이를 준 착호갑사가 부르던 소년의 별명이었다. 아마도 범에게 내몰리던 중 사수는 결국 거대한 범에게 죽은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그 이름을 듣자 소년은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울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은 소년이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증오라는 감정을 소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범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나쁜 자식.. 네가 사수 아저씨를 잡아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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