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13화 [착호갑사 2]

kaether 2023. 7. 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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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13화 [착호갑사 2]


창귀

 

범에게 죽은 사람의 혼이 악령이 되어 또 다른 호환 피해자를 만드는 귀신

 

박지원이 쓴 (호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범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릴 수 있게 된다. 범이 처음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창귀는 지나가는 사람을 범에게로 유인하고,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펴 범을 위해 함정과 쇠뇌를 부순다. 그리고 범이 새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이 되어 생전 알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모조리 범에게 알려 준다.


 

“사또~ 사또~ 큰일 났습니다요~”


한 남자가 황급히 달려 오며 요란스럽게 수령에게 말했다.

 

“어허! 웬 소란이냐!”


이에 수령은 남자를 호통치며 진정시켰다. 남자는 곧이어 다급히 수령에게 자신이 들은 소식을 전했다.

 

“사또 선발대로 갔던 착호갑사들이 당했다고 합니다.”
“착호갑사들이? 전부? 그게 무슨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느냐 착호갑사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전부 당했다니.. 아무리 범이 사납다고 한들 용맹한 착호갑사들이 그리 쉽게 당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예 그것이 착호갑사들이 범을 잡아서 내려 오는 길에 또 다른 범에게 당한 듯 싶습니다.”
“그 소식은 누구한테 들은 것이냐?”
“예 지나가던 약초꾼이 발견 했다고 합니다.”
“그자를 당장 데리고 오거라! 사건의 진상을 물어 봐야겠다.”

 

 

잠시 후 수령에 호출에 흙투성이의 복장을 한 남자가 수령 앞에 섰다. 그런 그를 보며 수령은 낮은 목소리로 근엄하게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 네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내게 빠짐없이 말해 보거라!”

 

남자는 잠시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사또 저는 그저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파는 약초꾼으로 그날도 어김없이 산에서 약초를 캐고 내려 오는 중이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길래 그저 산짐승이겠지 하고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 보이자 수령은 그에게 재촉했다.

 

“계속 말해 보거라!”

 

수령의 말에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가보니.. 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뜯겨져 주변에는 피비린내가 코를 찌를 정도로 지독하게 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체들을 보니 범에게 당한 듯 찢겨 나간 자국들이 착호갑사 복장을 한 이들에게 아주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수령은 너무나도 침착하게 애기 하는 약초꾼을 보며 물었다.

 

“음 다른 범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아 그것은 주변에 죽은 범의 시체가 묶여 있어서 알았습니다.”
“음 .. 범이 무리 생활을 할 리도 없고 한 지역에 두 마리의 범이라..”

 

수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남자는 이내 또 망설이는 듯 싶더니 조심스럽게 수령에게 말했다.

 

“사또 그 범을 잡아서는 아니 됩니다.”

 

남자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령은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범을 잡아서는 안된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더냐!”
“그 범은 평범한 범이 아닙니다.”
“평범한 범이든 아니든 사람에게 헤를 끼치는 짐승을 가만히 놔둘 수 는 없다.”

 

수령은 남자를 근엄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지만 남자는 수령의 말을 예상했는지 곧이어 말을 이었다.

 

“사또! 피해만 더 커질 뿐 입니다. 발자국의 크기로 보아 그 범은 10년 전에 전국에 명성을 떨치던 산군이 틀림없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산군이란 말에 수령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떠 올랐다.

 

“흠… 산군이라.. 무슨 연유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실은 소인은 약초꾼 생활을 하기 전에 착호갑사로 지냈었습니다. 다 옛날 일이지만..말입니다.”

 

남자는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말을 멈추자 수령은 그에게 말했다.

 

“그래 계속 애기해 보거라!”

 

남자는 천천히 지난 일을 읆으며 말을 이었다.

 

“예! 그 일이 있었던 것은 10년 전 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범을 잡기 위해 다른 착호갑사들과 함께 산속에 함정을 설치하고 산을 내려 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소리가 들려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사람이 하나 서서 저희를 부르더군요. 당연히 저희는 그에게 위험하니 산을 내려가라고 당부했습니다.”

 

수령은 물었다.

 

“그랬더니?”

“근데 남자의 상태가 조금은 이상해 보였습니다.”

“음 이상하다 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이냐”

“이내 그 사람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산속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흰 당연히 미친 사람이겠지 했지만 차마 외면 할 수 없어 다급히 그 사람을 쫓아 갔습니다. “이보시오! 산속은 위험하니 내려오시오!”라고 부르며 저희는 다급히 그 사람을 불렀지만 그 사람은 저희보다 산을 훤히 아는 듯이 아주 빠르게 산길을 오르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쫓아가다 결국 해가 지기에 이르러 하는 수 없이 저희는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내려가던 중 다시 한번 확인 차 함정을 보니 누군가 함정을 다 부숴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함정은 손 쓸 수도 없이 누군가 돌멩이로 내려쳐 부서져 있었습니다. 흔적으로 보아 필시 사람의 소행이었습니다.”

“아니 범을 잡기 위해 설치 해놓은 덫을 누가 부신다고 말이냐”

“사또 마저 들어 보십시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범이 나타나 제 옆에 있던 착호갑사를 갑자기 덮쳤습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 인지라 저희는 황급히 대열을 유지하며 범을 상대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범은 저희에 공격을 훤히 꿰뚫어 보듯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저희를 한 명씩 한 명씩 죽여 나갔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일행은 황급히 산속으로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저와 다른 착호갑사 들은 간신히 바위 산을 기어 올라 피신했고 다른 이들은 산속으로 도망쳤지요. 산속에는 사람들의 연이은 비명 소리가 들려오며 저희는 바위산 위에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저희는 꼼짝없이 바위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행의 동생의 목소리가 바위산 밑에서 들려 왔습니다. 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착호갑사가 황급히 동생에 부름에 답하며 동생을 찾았습니다. 동생은 바위산 밑에서 형을 불렀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올라오라고 했지만 동생은 다리를 다쳤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행들은 내려가 동생을 데려 오기로 했죠! 일행들이 내려온 순간! 뒤에 숨어서 기다렸다는 듯이 범이 나타나 일행들을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그 참혹한 참상을 보고 저는 절규했습니다. 용기가 없어 혼자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저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절규 하던 중 다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듣고 놀랐습니다. 분명 눈앞에서 범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황급히 부름에 답하며 생사를 물었습니다. 바로 그때 였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동료가 죽을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안돼! 내려 오지마! 그 순간 다시 범이 나타나 그 동료의 숨통을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죽은 동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인기야 내려와 괜찮아” 라고 말이죠…"

 

“인기는 저의 이름이었습니다…”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령은 남자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수십년간 착호갑사를 배출해 내면서도 수령은 사람을 조종하는 범이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가 너무 놀라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었다.

 

“너무 놀라 헛것을 들은 것이 아니더냐!”

 

그러나 남자는 수령에게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사또 그 범은 다른 범들과는 다릅니다! 요상한 수를 부리며 사람의 혼을 조종해서 다른 이들을 꿰어냅니다…”

 

 

남자가 떠난 뒤 수령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흠… 요상한 범이라…”


소년은 노승을 재촉하며 불렀다.

 

“스님! 빨리 오세요!”

 

노승은 앞서 뛰어가는 소년을 따라가며 말했다.

 

“허허 녀석 천천히 가거라!”

 

소년은 지난밤 악몽을 꾼 이후로 이제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소년에게는 특히나 지난밤 악몽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착호갑사 가 준 선물에 소년은 용기를 얻은 듯 보여 다행이라고 노승은 생각했다.

 

“착호갑사 나가신다!”


신나서 뛰어가는 소년의 목에는 사수가 준 목걸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덤벼라 범아 이 몸은 착호갑사이니라”


소년은 산을 향해 외쳤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일행에게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말은 타고 온 군인들이 이내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 이산은 지금 출입 금지입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얼마 전 본 착호갑사들과 유사해 보였다.

 

“저희들은 착호갑사 입니다. 얼마 전 선발대로 갔던 착호갑사들이 범에게 모조리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내의 말을 들은 소년은 놀라며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착호갑사 님들이요? 엊그제도 봤는 걸요?”

 

소년의 대답에 사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아가 착호갑사들을 보았다고?”

 

그러자 옆에 있던 노승이 대신 답했다.

 

“예 엊그제 범이 나타나 위험하니 그분들께서 저희와 같이 동행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분명 그때 범을 잡아서 내려가셨는데 모조리 살해 당했다는 것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러자 사내는 말에서 내려오며 노승 앞으로 다가왔다. 말에서 내린 사내의 풍채는 족히 7척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거구였다.

 

‘우와 ~ 엄청 크다 범보다 큰 것 같애’


소년은 사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어 사내는 일행들을 내려다 보며 물었다.

 

“선발대로 갔던 착호갑사들을 보셨습니까?”

“예 엊그제 까지 동행하다 그분들이 범을 잡은 뒤에 헤어졌지요!”

 

사내는 일행들을 잠시 수상한 눈초리로 훑어보더니 이내 소년에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낚아채며 물었다.

 

“이것은 어디서 난 것이냐?”

 

사내가 묻자 소년은 목걸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움켜쥐며 말했다.

 

“주세요! 제가 잡은 범입니다!”

 

 

“내놔요! 제거예요!”

 

소년은 사내의 손가락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며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의 손아귀의 힘은 소년의 힘으로 풀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승은 오해에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설명을 덧붙이며 이어 말했다.

 

“먼 저번에 동행한 착호갑사들께서 아이에게 선물로 준 것이니 혹시 라도 오해는 마십시오!”

 

곧이어 노승에 말에 오해가 풀린 사내는 그제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손에 힘이 빠지자 소년은 재빨리 목걸이를 품속에 숨겼다. 그가 난생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니 만큼 소년에게는 특별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다시 뺐기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남자는 단호하게 일행들에게 말했다.

 

“아무튼 이산은 위험합니다. 저희 일행과 함께 내려가시지요!”

 

그리고는 사내는 뒤에 있는 착호갑사들에게 명령했다.

 

“너희 둘은 스님과 아이를 데리고 먼저 마을로 가 있거라!”
“허나 이번에 잡을 범은 위험하다고 수령님께서 그렇게 신신당부를…하셨잖습니까? 대장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사내는 호통을 치며 남자를 크게 꾸짖었다.

 

“지금 네놈의 말은 사람의 목숨보다 범을 잡는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냐? 설사 잡는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애와 노인을 데리고 그 범을 잡으러 갈 수는 없다! 생각해 보거라 무엇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지 말이다.”

 

그제서야 남자는 수긍하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대장!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내는 말에서 내려오며 일행들을 향해 손짓했다.

 

“타시지요 마을까지 저희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