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35화 [천적 1]

kaether 2023. 8. 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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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35화 [천적 1]



영노

 

짐승은 물론 무생물이나 바위, 심지어 그림자도 삼켜버리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는 영노는 모든것을 집어 삼킨다. 그의 생김새를 보면 머리에는 짧고 뭉툭한 뿔이 달려 있으며 온몸에는 푸른색의 비늘을 두르고 있어, 연못에서 그를 본다면 분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연못에서 그를 본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순식간에 연못에서 튀어 나와 모든 것을 삼켜버리니까


한편 이시미를 찾아 나선 일행들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지난 밤 새벽 일찍 부터 이시미가 있다는 곳으로 서둘러 왔건만,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사라져 버린 이시미의 흔적 뿐이었다.

일행 중 제일 먼저 입을 연것은 장자마리였다. 장자마리는 허탈감을 토로하듯 말했다.

 

{젠장.. 거구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자 거구귀 역시 장자마리에게 대꾸했다.

 

{이시미란 정처 없이 떠도는 요괴. 그자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고 그러셔~ 그럼 이제 너의 그 잘난 머리로 다시 한번 예측해 보시지. 어?}

{지금으로써는 이시미의 흔적을 쫓아가는 것 밖에 딱히 도리가...}

{뭐라고? 무슨 수로 쫓아 가려고? 이 자식이 언제 떠났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고 무작정 쫓아가다? 어? 또? 또 헛걸을 하려고?}

 

보다못한 노승과 소년이 한 마디씩 애기를 꺼냈다. 물론 거구귀의 편을 들기 위해서 였지만 말이다.

 

"그쯤 해두러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않겠느냐?"

"그래 맞어 너무 거구귀한테 뭐라고 하지마"

 

거구귀는 소년과 노승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그리고 현자께도}

 

장자마리는 한 껏 토라진 말투로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칫.. 거구귀 편만 들어주고. 만약에 내가 헛걸음 시켰어도 그랬을까}

 

그때 소년의 그림자에서 상황을 듣고 있던 구미호가 대화에 끼어 들었다.

 

{나라면 쫓아 갈 수 있을것 같은데}

 

구미호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은 어느새 소년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구미호에게로 향해 있었다. 구미호를 보며 장자마리가 소리쳤다.

 

{맞아! 우리한테는 구미호가 있었지}

 

장자마리의 말에 일행들 또한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우님이라면 쫓아갈 수 있을 거야"

{이시미를 찾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 도한 하늘의 뜻이라면"

 

소년, 거구귀, 노승 이 차례대로 말하며 이제 모두의 기대는 구미호에게 향해 있었다. 구미호는 쑥쓰러운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크흠.. 뭐 하는 수 없지. 다른 이무기라면 안 쫓아 갔을 테지만 이시미라면 내가 특별히 한번 쫓아가서 애기 해 볼게. 너희들은 수도에서 기다리고 있어}

 

일행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구미호는 곧장 이시미를 쫓아 바람처럼 사라졌다.

 

-휘릭

 

사라져 버린 구미호를 바라보며 소년과 노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구미호님.. 괜찮으시겠죠?"

"구미호라면 괜찮을게니 너무 염려치 말거라"

 


 

{네 이놈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 주제에… 감히 이 몸의 상처를 입히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까득 문 그의 입에서 부터 살기 어린 불꽃이 감돌기 시작했다. 강철이가 곧이어 사명대사와 이주국을 향해 자신이 머금은 불꽃을 쏘아 내려 던 찰나! 뜻밖에 인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하하하하 꼴이 말이 아니네? 천하에 강철이가 인간들한테 고전하고 말이야?}

 

사명대사와 이주국의 앞에 선 두억시니가 강철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를 본 강철이도 뜻밖에 조우에 당황하며 말했다.

 

{두억시니… 빠져라 네 녀석한테는 볼일 없다.}

 

그러자 두억시니도 강철이를 향해 곧바로 의미심장한 말로 응대했다.

 

{나한테 볼일이 없다고? 글쎄? 나는 볼일이 있을 것 같은데}

 

{…}

 

순간 정적을 감도는 스산한 투기가 그들을 중심으로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 잠깐이 정적이 일어나고 먼저 정적을 깬 것은 강철이 쪽이었다.

 

-푸화하하하-

 

강철이는 자신의 입에 머금은 불꽃을 두억시니를 향해 사납게 쏘아 붓기 시작했다.

강철도 녹아내리게 할 것만 같은 고온의 열기가 두억시니를 향해 사정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억시니는 그런 엄청난 고온의 열기를 여유롭게 한 손으로 막아섰다. 불꽃을 정면으로 막아서고 있는 그의 오른손에는 흡사 거대한 도깨비 손의 모양이 환영처럼 투영되어 있었다.

 

두억시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강철이를 한껏 도발하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인간들한테 눈이나 찔리지… 아무래도 너는 평생 이무기로 살아야겠다.}

 

곧이어 불꽃을 모두 토해낸 강철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나를 얕보지 마라 두억시니…}

 

곧이어 그의 입에서 부터 아까와는 다른 구 형태의 불꽃이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 보고 있던 두억시니도 흥미로운지 제자리에 펄쩍 뛰어오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휘이이잉

 

강철이의 입안에 무언가 휘몰아 치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구 형태의 불꽃이 두억시니를 향해 발사 되었다.

 

-퍼엉-

 

엄청난 파장이 피탄지를 기점으로 폭풍처럼 휘몰아 치자 성벽은 물론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튕겨져 날아갔다.

강철이의 회심에 일격에 맞은 두억시니는 기절했는지 바닥에 드러누운채 미동조차 하지 않아 보였다.

 

{흥… 별것도 아닌 놈이}

 

자신이 뱉어낸 여의주를 다시 입으로 회수하고 돌아 서려 던 찰나…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쓰러진 줄 알았던 두억시니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철이도 불길함을 감지했는지 쓰러져 있는 두억시니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강철이는 반사적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니 이 미친놈이…}

 

두억시니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일어났다.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웃는 두억시니의 모습은 마치 투신같아 보일 정도였다.

 

{이야.. 방금 건 조금 위험했어! 그게 그거지? 네들이 가지고 있는 여의주?}

 

너무나도 태연하게 일어난 두억시니를 보자 강철이의 하나 남은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억시니의 광기를 마주한 강철이는 그를 보며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전대부터 전해 들었던 천적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이다.

강철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다시 한번 두억시니에게 화염을 내뿜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

 

피탄지를 주변으로 다시 한번 고온의 화염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강철이는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철이의 길고도 거대한 몸체가 공중에 똬리를 틀며 두억시니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휘날리며 강철이는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 곧바로 허공에 떠오른 두억시니의 거대한 오른손(환영체)이 도망치는 강철이의 꼬리를 휘어 잡았다.

 

-꽈악-

 

{어딜 도망가려고! 나는 너한테 볼일이 있다니까}

 

두억시니의 거대한 오른손의 환영체가 허공에 떠오른 강철이를 끌어 당겼다. 두억시니는 강철이를 허공에 대고 사정없이 원을 그리며 돌리기 시작했다. 두억시니의 오른손에 붙들려 진 강철이의 입에서 부터는 조금씩 화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다면 이들의 모습은 흡사 쥐불놀이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끄아아아아앜앜카 화르르르-
-휘이이이이이-

 

강철이의 입에서 부터 새어 나오는 비명 섞인 불꽃과 함께 까만 밤이 뒤덮은 하늘에 원형의 불꽃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밤 하늘 아래에는 미친 듯이 쥐불놀이를 하고 있는 두억시니의 미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스산한 광기를 넘어 미치광이의 모습처럼 보이는 두억시니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한편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고 있던 두억시니의 부하 도깨비는 한 쪽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메 만지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 저 대장! 또 시작이네…}


그 시각 이시미의 흔적을 따라 쫓아간 구미호는 얼마 안 가서 이시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흠… 이상한데? 이쪽은 중촌인데}

 

그러나 이시미가 가는 방향은 놀랍게도 중촌이었다. 구미호가 이토록 의아해 하는 이유는 중촌이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중촌이라 함은 많은 요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요괴들의 마을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중 대표적으로 이무기가 그렇다. 그곳은 도깨비왕의 보호 하에 많은 요괴들이 살고 있는 요괴들의 터전이다. 그런 터전에 이무기 같은 재앙 급의 요괴들은 역사적으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그 이면에는 과거 수천 년 동안 많은 이무기들의 행실에서 비롯된 결과 였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 중촌과 도깨비 왕이 없던 시절!

천년의 한번 용이 될 기회를 염원하던 많은 이무기들은 자신의 요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요괴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먹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무기들은 요괴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고 요괴들은 이무기로 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터전이 필요 했다.

 

그 결과 요괴들은 중촌이라는 마을을 세우고 이무기들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왕을 선출했다. 그것이 도깨비 왕의 기원이었다.

 

이무기로 부터 요괴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만큼 도깨비 왕이라 함은 그만큼 강함도 겸비 해야 했다. 그것은 자연스레 도깨비 왕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자리 잡았고 세월이 흘러 그 조건은 자연스레 마을 내의 세력 싸움을 겪은 뒤 점차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이 추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도깨비 왕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그것은 이무기를 혼자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한다.]
[둘째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이매망량 무리들을 휘하에 둘 것]
[셋째 선대 도깨비 왕에게 인정을 받을 것]


이러한 이유로 도깨비 왕은 이무기가 중촌에 얼씬 거린다면 직접 나서서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 이것이 이무기들이 중촌 근처에 얼씬 거리지 않는 이유였다.

 

{여기는 중촌인데… 왜 이곳으로 가는 거지? 죽고 싶은 건가?}

 

그때 였다. 누군가 구미호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스르르르-

 

{오호라.. 뜻밖에 횡재구나! 이시미를 만나기 전 요깃거리로 딱 좋겠어!}

 

구미호 앞에 나타난 영노가 자신의 푸른색의 비늘의 투기를 두르며 말하자 구미호도 살기 어린 눈빛을 띄며 영노를 바라 보았다.

 

{이무기…}


구미호와 이무기!

 

이무기는 천년의 세월을 지내며 용이 될 수 있는 승천의 기회를 염원하고 구미호는 천년의 세월을 지내며 천호의 경지에 이르기를 염원한다.


그렇기에 같은 세월을 보내는 만큼 이들의 앙숙도 과거 수 천년 동안 계속되었다. 물론 이들의 힘의 균형은 일방적이다. 천호의 경지에 이른 구미호를 제외 하고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이길 수 있는 구미호는 없다. 그렇기에 떠돌이 생활을 즐겨하는 구미호는 이무기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기에 구미호는 이무기를 보면 이를 갈면서도 종종 도망치고는 했다.


영노는 자신의 커다란 입을 벌리며 구미호를 집어 삼킬 듯이 다가 왔다.

 

-크와아아아-

 

구미호는 재빨리 영노의 공격을 피했지만 곧바로 뒤따라오는 영노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내 요깃거리가 되거라!}

 

영노가 구미호가 있던 곳의 나무와 바위들을 집어 삼키며 다시 구미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미호도 이에 맞서 자신의 아홉 꼬리의 불을 붙이며 다가오는 영노의 머리에 쏘아 대기 시작했다.

 

{여우 불!}

-파파파파파파-

 

구미호의 아홉 꼬리에서 부터 아홉 개의 불꽃이 쏟아졌지만 그러나 영노의 푸른 비늘은 다가오는 구미호의 불꽃을 무용지물로 만들 만큼 단단했다. 그렇기에 구미호는 다가오는 영노를 피해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칫.. 하필 이런 때에}


중촌에 있는 도깨비 왕의 사무실

도깨비 왕의 보좌관이 도깨비 왕에게 말했다.

 

{대장! 두두리가 찾아 왔습니다.}
{어 그래? 잠깐만 지금?}
{왜 그러십니까? 약속 있으세요?}

 

그러자 보좌관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도깨비 왕이 대꾸했다.

 

{어… 아니다 들라고 해!}
{네!}

 

곧이어 보좌관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두두리가 들어 왔다. 두두리를 마주한 도깨비 왕은 간만에 재회에 내심 기뻤지만 그의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도깨비 왕은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나오는 투로 틱틱거렸다.

 

{어 그래 두두리! 한동안 인간 세계에서 안 나오더니 여긴 어쩐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