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34화 [각자의 길 10]

kaether 2023. 8. 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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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34화 [각자의 길 10]



좌의정 (이건명) 이대감이 말했다.

 

“역시 대감을 먼저 찾아뵙길 잘했군요… 대감께서 라면 분명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우의정 (박규수) 박대감이 이대감의 말에 의중을 품고 점잖게 대꾸했다.

 

“말씀의 어폐가 있으십니다?”
“하하하하 어폐라니요! 저는 그냥 제 의견을 말한 것 뿐입니다.”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신경전으로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먼저 정적을 깬 쪽은 박 대감이었다.

 

“아무튼 비형랑 그자에 대한 일이라면 이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요”
“허허허 대감 왜 그리 그자를 경계하십니까?”
“경계라니요 저는 그저 전하의 부탁이니 만큼 신중히 하고 싶어 그런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계속되는 이대감의 부탁에 박대감은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밤이 깊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오늘 밤이라면”
“그게 무슨…”

 

그러자 스산한 살기와 함께 누군가 박대감의 뒤에 나타났다. 박대감의 목으로 살기를 품은 부채가 다가왔다.

박대감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비형랑이 서 있었다. 박대감은 비형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너는…”

 

박대감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거기까지 였다. 그것은 박대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박대감은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채로 자신을 점점 내려다보는 비형랑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툭-

 

앉은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간 박대감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방안에는 박대감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부채의 묻은 피를 털어내며 비형랑이 말했다.

 

“오늘 밤은 아주 길겠습니다.”

 

이대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박대감의 식솔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무자비하고도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이었다.

 

-으아아아아-
-꺄아아아아-

 

박대감의 식솔들과 하인들은 자객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피잇-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향이 퍼져 나가며 곧이어 박대감의 마지막 식솔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이대감과 비형랑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각자 자신의 대업에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짐작했다.


한편 사또 이주국이 도성으로 보낸 전령은 황급히 도성에 도달했다. 소식을 들은 왕(선조) 은 곧바로 이주국이 있는 곳으로 병력을 호출하라 명한다.

 

“도성에 있는 병력은 물론 주변에 있는 병력을 동원해 당장 그 요망한 이무기를 속히 토벌하도록 하라!”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어명을 받은 신하들은 곧바로 병력을 호출해 도성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도성을 지키는 이들은 내금위 와 의금부 만이 남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비형랑과 이대감은 마침내 역모를 실행해 옮기기 시작했다.

 

“거사를 속히 진행하라!”

 

이대감의 반란 세력은 곧바로 도성으로 진격한다.

 

-끄아아아아-

 

도성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건물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이대감의 수천의 병력과 비형랑의 수천의 이매망량들은 수적으로도 도성의 병력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왕(선조)은 속절없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도성은 이제 무고한 이들의 피로 물들이며 왕(선조) 의 목을 점점 조여오기 시작했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왕의 측근들과 상선, 내금위장은 다가오는 반란군들에게서 왕을 호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선조)은 그들의 말을 듣고도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왕(선조)이 입을 열자 신하들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내게 벌을 내리시는게지”

 

그러자 왕의 측근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전하~ 옥체를 보중하옵서소~”

 

곧이어 내금위장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전하 옥체를 보중하시고 일단은 후일을 도모 하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렇지만 왕의 반응은 여전히 담담했다.

 

“됐다. 이제 그만 하거라! 내가 버티면 버틸수록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더욱이 늘어 날것이다. 그러니 반란군들에게 내 뜻을 전해 어서 빨리 이 무자비한 학살을 멈추도록 하라!”
“전하! 하지만…”
“그것이 백성을 위하는 길이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전하~"

“짐이 죽고 난 뒤에도 나라를 위할 충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설사 그것이 역모를 도모한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하늘의 뜻! 그러니 그대들은 들으라 내 역사속에서 사라질지언정 나라를 위한 그대들의 충심은 내 익히 알고 있는 바! 무고한 이들의 피가 더 이상 이 조정안에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조속히 투항하고 그대들의 목숨을 연명하거라! 그러니 그대들은 살아서 그대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후세에 전해 나라를 지키는 일에 마저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백성을 위한 일이고 나라를 위한 그대들이 걸어야 할 길이니라.”

 

왕의 뜻을 들은 신하들은 일제히 왕(선조)에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하~"


-펑 펑 펑-

 

화포가 빗발치는 성벽 외곽에는 (이무기)강철이가 진격해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이무기를 저지하기 위한 병력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쿠르르르 콰앙-

 

사명대사 유정의 법력으로 인한 번개가 다가오는 강철이를 향해 수차례 내려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악-

 

생각보다 거센 저항에 강철이는 고전하고 있었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강철이 자신은 이무기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 현 시대에 천년에 세월을 코앞에 두고 용이 되기 직전인 이무기의 수는 고작 셋! 강철이, 영노, 이시미 그 둘 중 당당히 재앙이라 불린 만한 이명을 갖고 있는 강철이에게는 마을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순간의 여흥 거리에 불과한 결정은 그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강철이는 법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고작 인간 주제에 훗날 용이 될 이 몸에게 대항하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그러자 사명대사 대신 이주국이 그의 말에 대신 답하였다.

 

“용이건 뭐건 마을을 위협하는 요괴에게는 천벌이 마땅하다!”
{흥 어리석구나…}

 

강철이의 말과 함께 스산한 기운이 주변을 감돌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하늘에서는 또 한번의 천둥과 함께 비구름을 동반한 검은 구름떼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치는 우박들로 인해 병사들도 또한 하늘을 올려다 보기 시작했다.

 

“우박?”

 

우박이 농작물의 피해를 끼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박이 내리는 것을 보고 좋아할 이들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우박이 사람을 헤칠 정도로 위험한 것은 아니기에 병사들은 내려오는 우박을 덤덤히 맞으며 여전히 강철이를 향해 연신 화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박들의 크기가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쿠쿵쿠쿠쿠-

 

곧이어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들의 크기가 쌀알 만한 크기에서 시작해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새 사람의 머리통 만한 크기로 변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악-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통 만한 우박에 머리를 맞은 병사가 쓰러졌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병사들이 동조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방패! 방패를 가져와라!”

 

황급히 하늘을 향해 방패를 두른 이들은 우박에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방패를 두르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으악-
-으악-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화포를 장전하던 그들의 속도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회를 틈타 강철이의 거대한 꼬리가 성벽 외곽을 강하게 내려쳤다.

 

-쿠와아앙-

 

거대한 이무기의 몸체 만큼이나 단단한 그의 꼬리 공격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흙먼지가 공중에 휘날리며 그에 따라 공격에 휘말린 이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기 시작했다.

상황을 인지한 이주국이 병사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방패를 두르고 서둘러 이무기를 향해 화포를 재 장전하라!”

 

이주국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무기는 성벽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기에 성가시던 화포 또한 이제 강철이의 사정권 안에 들어 왔다.

 

-스르르르르-

 

성벽 외곽을 둘러싸는 강철이의 기다랗고 거대한 몸체가 화포들은 물론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콰아아앙-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퍼져나갔다. 성벽이 무너져 내리며 강철이를 견제하던 화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사님 어서 빨리!”

 

이주국이 급히 사명대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곧이어 사명대사도 자신의 오른손에 든 염주를 굳게 움켜쥐었다.

 

-쿠르르 콰앙-

 

곧이어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강철이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

 

강철이는 괴로운지 비명을 지르며 사명대사를 노려 보기 시작했다.

 

{귀찮은 녀석! 곧 죽을 날도 머지 않아 보이는 녀석이 명을 제촉하는 구나! 좋다 내 너부터 먼저 죽여주도록 하마!}

 

강철이의 거대한 머리통이 곧바로 사명대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그렇지만 사명대사 유정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염주를 꽉 붙들며 강철이를 향해 번개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콰아앙-
-쾅쾅-

 

번개에 맞으면서도 강철이는 사명대사를 향해 진격해왔다. 그가 발버둥 칠 때마다 그의 사정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대는 점점 초토화 되었다.

 

{어리석은… 저항해도 소용없다.}

 

까득 문 강철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퍼져나갔다. 강철이는 고통을 참으며 사명대사를 향해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강철이의 거대한 이빨이 사명대사를 집어 삼키려는 순간!

 

-푹-

-끄아아아아-

 

갑자기 강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비명을 지르는 그의 눈에는 기다란 창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이주국이 강철이의 눈에 때려 박아 넣은 창이었다.

이주국은 사명대사를 부축하며 자리를 피했다.

 

“대사님 피하십시오!”

 

괴로워 하는 강철이의 몸을 따라 성체 외벽이 무너져 내리며 그에 따라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한편 그들의 전투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억시니 였다.

 

{하하하하 아주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구 만 내가 이럴 줄 알고 강철이를 맡게다고 한거야!}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도깨비가 그의 말에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이예요! 이거야 말로 손 안 대고 코풀기 아닌가요? 대장!}

 

두억시니와 영노는 연못에서 이야기를 나눈 시점에서 강철이는 두억시니 자신이, 그리고 이시미는 영노가 맡기로 역할을 나누었다. 그렇기에 마을을 함락 시키고 있는 강철이의 행보는 빠르게 두억시니의 귀에까지 들어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대로 녀석이 먼저 날뛰는 덕분에 빨리 찾았어!}

 

평소에도 싸움을 즐겨하는 두억시니는 부하들에게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이곳으로 도착했다. 반면에 이시미에 대한 행적은 감감 무소식이기에 영노는 이시미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난 참이었다.

두억시니가 흥미롭다는 듯이 무너져 내리는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인간 중에도 저런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보통이 아닌데?}
{그러게 말이예요! 그냥 구경하다가 강철이가 지칠 때 쯤 습격하면 일도 아니겠는데요?}

 

두억시니의 몸에 두른 투기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두억시니는 도깨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안 돼지.. 안돼! 다 쓰러져 가는 녀석을 이겨 가지고는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그럼…}
{그래! 이제 나도 나서볼까?}
{굳이 지금이요…?}
{왜 재밌잖아! 덕분에 강한 녀석들을 동시에 두 명이나 상대할 수 있고 말이야!}
{하아…}

 

두억시니의 부하 도깨비는 한숨을 쉬고 있었지만 반면에 두억시니의 표정은 한껏 들떠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