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36화 [천적 2]

kaether 2023. 8. 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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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36화 [천적 2]


이시미

 

옛날 옛날 어느 산골에 사는 한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은 평소처럼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다 우연히 벼랑 끝에 있는 산삼을 발견했다. 이에 나무꾼은 벼랑 끝에 있는 산삼을 혼자 채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웃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결국 이웃 사람의 도움으로 산삼을 채취하는데 성공했지만, 재물에 눈이 먼 이웃 사람들은 나무꾼에게서 산삼을 뺏고는 그를 벼랑 끝에 밀어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나무꾼이 벼랑 끝에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그때 누군가 나무꾼을 구해 주었다. 그것은 온몸을 갈색의 비늘로 두른 이무기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무기의 몸에는 갈색의 비늘 뿐만이 아니라 선혈이 낭자하게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무꾼은 보답으로 이무기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상처를 완전히 회복한 이무기는 나무꾼에게 보답으로 자신이 그동안 모아온 금은 보화를 나무꾼에게 주고는 하늘로 승청하여 용이 되었다.


도깨비 왕의 물음에 두두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장. 100년 만인가요?}

{그러게 말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도깨비 왕의 선대 보좌관 두두리와 도깨비 왕은 오랜만에 재회에 과거를 회상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도깨비 왕은 현자 자신의 보좌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떠나고 나서 그동안 이 녀석이 고생 좀 했지! 다시 중촌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대화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도깨비 왕의 현(現) 보좌관을 뒤로 하고 도깨비 왕이 입을 열었다.

 

{뱅뱅 돌리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봐!}
{예.. 실은 얼마 전에 하늘에서 천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도깨비 왕이 놀라며 물었다.

 

{뭐? 천명?}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대장께도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맙소사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도깨비 왕이 이토록 놀라는 이유. 그것은 두두리가 백년에 한번 씩 다가오는 재앙을 예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 두두리는 도깨비 왕의 보좌관 시절부터 줄곧 백 년의 한번 씩 다가오는 재앙을 예지해 도깨비 왕을 보좌하던 이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두두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도깨비 왕이 신뢰를 가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곧이어 도깨비 왕을 바라보며 두두리가 나지막이 말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피 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그럼 대상은?}
{인간 세계 뿐만 아닌 이곳 중촌도 마찬가지 입니다.}

 

{…}

 

순간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도깨비 왕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것 또한 하늘에 뜻이라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대장!}
{조심은 무슨… 백 년에 한번 씩 있는 일인데}
{대장!}

 

전(前) 보좌관의 익숙한 잔소리가 시작되려 하자 도깨비 왕은 귀찮은지 한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대꾸했다.

 

{아 알겠어! 알겠어!}
{무슨 대책이라도 있으십니까?}
{뭐… 이번에도 네가 미리 언질을 준 덕분에…}

 

이어지는 도깨비 왕의 대답을 기다리며 두두리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몰라… 그냥 즉흥이지 뭐!}

 

{…}

 

그러자 순간 그들 사이에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번에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두두리 쪽이었다.

두두리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도깨비 왕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대장은 여전하시군요}
{괜찮아! 걱정 하지마! 나 몰라? 지난 오백년 동안 이 중촌을 지켜온거 보면 이번에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두두리 너도 먼 길 오느라 고생 했을텐데 이왕 온 거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나는 선약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

 

도깨비 왕이 나가고 현(現) 보좌관과 전(前) 보좌관의 어색한 침묵이 사무실 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

 

{저기… 차라도…}

 

***

 

한편 영노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구미호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젠장…}

 

영노를 피해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구미호의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나타나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구미호를 보며 영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얌전히 내 입으로 들어 오거라! 구미호}
{흥… 꿈도 야무지시군}

 

말은 이렇게 했지만 구미호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하늘을 날수 있는 이무기와는 달리 구미호는 하늘을 날수 없다. 이것은 태생부터 정해 진 종족의 한계다. 그렇기에 다가 오는 이무기를 바라보며 구미호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스스스스스-

 

달빛에 비춘 구미호의 빛나는 하얀 털과 함께 그의 몸에서 부터 강한 요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를 노려 보고 있는 영노의 푸른 몸에서도 스산한 투기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곧이어 둘의 최후의 격전이 이어지려 던 찰나!

 

-쿠콰콰콰쾅-

 

땅속에서 부터 치솟아 오르는 바위 덩어리들이 영노를 향해 덮쳐 왔다.

 

-파앗-

 

영노는 자신에게 치솟아 오르는 바위들을 가볍게 쳐내며 불청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시미…}

 

이시미는 구미호를 감싸며 영노에게 말했다.

 

{영노! 또… 요괴 사냥을 하는 것이냐!}
{하… 예전 부터 말했지만 내 일에 신경 쓰지 말랬지? 아! 아니다. 어차피 이번에는 내 쪽에서 볼일이 있었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오랜만이구나 이시미!}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이만 돌아가거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돌아가라니… 이거 참 섭섭한걸?}
{꼭 피를 봐야겠는가?}
{하하하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시미?}
{지난 일은 지난 일! 이번에도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영노!}
{오늘은 운이 아주 좋은 날이구나!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니..}

 

이시미와 영노의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과 함께 곧이어 둘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스르르르-
-스르르르-


같은 시각 궁궐은 이미 비형랑과 좌의정 (이건명) 이대감의 세력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왕의 항복이 일찍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이들의 후일까지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유배를 당해 죽을 때 까지 도성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반란에 성공한 이들의 앞에 왕(선조)을 제외한 그의 신하들이 줄줄이 묶여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끌려가던 왕(선조)의 신하 중 하나가 이대감을 향해 진노하였다. 그러자 이대감은 그자의 목에 칼을 갖다 대며 말했다.

 

“이런 아둔한 놈… 하늘이 바뀐지 오래 거늘 그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곧이어 이대감이 칼을 높이 치켜 올리며 그를 베어 버리려 던 찰나! 왕이 소리쳤다.

 

“그만하게! 짐과 약조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무의미한 학살은 자행하지 말아주게!”

 

이 대감은 칼을 거두며 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지요.. 그래도 한때 전하의 신하였던 자로써 전하의 마지막 예우는 지켜드리도록 하지요!”

 

곧이어 이대감이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자를 끌고 가라!”

 

이대감의 말에 왕의 신하들은 반란 세력들의 의해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왕은 끌려가는 자신의 신하들의 뒷모습을 애탄스럽게 바라보며 이대감에게 말을 이어갔다.

 

“새로운 왕이 될 자가 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자에게 전하거라! 자고로 임금이란 백성이 없다면 임금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신하 없는 임금이 어떻게 서며, 자식 없는 아비가 어떻게 서며, 제자 없는 스승이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새로운 임금이 될 자는 인재를 아끼고 더 이상의 무자비한 희생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선대께서 말씀하시길 학부가 잘되어 있어야 나라가 발전하며, 재무가 잘 정리되어 있어야 나라의 살림이 안정되니 그것이 곧 나라가 흥망성쇠 하는 유일한 기로라고 하셨다.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느 시대나 인재가 필요하다. 백성을 아끼고 신하의 말에 귀를 귀울여 나라를 보살피는 것 그것이 왕의 길이다. 내 비록 마지막 말로는 이렇게 되었다만 새로운 왕이 될 자는 나와 같은 길을 걷지 말라! 그것이 내 마지막 부탁이다.”

 

왕(선조)은 마지막까지도 반란을 꾀한 역모 세력들에게 자신의 신하들을 죽이지 말고 새로운 나라를 위해 마저 이바지 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선조가 인재를 귀히 여겼던 그의 평소 행실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이 살아남은 신하들에게 천운인지 아니면 불운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왕의 부탁 덕분에 살아남은 왕의 측근들 중 대다수는 좌천을 당할지언정 사형의 위기는 넘겼기에 훗날 조선의 미래의 초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구나…”

 

길을 걷던 노승이 입을 열자 곧이어 소년도 그의 말에 동의 하듯 말했다.

“그러게요 스님…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나저나 구미호는 잘 도착 했으려나 모르겠구나”
“구미호 님이라면 아마 수도에서 먼저 와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노승은 먼저 보낸 구미호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뭔가 예감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도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이들의 대화에 장자마리가 끼어 들며 말했다.

 

{왜 아까는 괜찮을 거라더니 이제 와서 걱정되는 거야?}

 

장자마리의 말의 노승이 대꾸했다.

 

“그냥 이 늙은이의 노파심 때문이니 너희들 까지 염려 할 것 없다.”

 

{칫… 늙은이는 무슨! 내가 몇 번을 말하지만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니까? 너 내가 몇 살 인줄 알면 아주 깜짝 놀랄걸? 내 나이가 말이야…}

 

그때 장자마리의 말을 끊으며 소년이 노승을 바라보았다.

 

“스님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여우 님 이라면 분명 괜찮을거예요! 스님도 그때 보셨잖아요! 여우님이 수백의 요괴들을 혼자 모두 물리 친 거”
“그렇긴 하구나.. 하긴 구미호라면 어디 가서 꿀릴 요괴는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소년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노승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묻어 나자. 그들의 분위기도 점차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니.. 이것들이 왜 자꾸 내 말을 끊는거야’


소년 일행은 수도에 도착하기 전 한 주막에서 끼니를 해결 하고 있었다.

 

-후루루루룩-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국밥을 들이 키고 있는 소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노승이 말했다.

 

“허허허 은휼아 천천히 먹거라 그러다 체하겠다.”
“후루루 괘.. 괘찮아요 스님!”

 

입안에 음식을 가득 머금은 채 소년이 답하자 소년의 입에서 부터 밥알이 주변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노승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띄운 채 소년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 할 뿐이었다.

 

“그래 많이 먹거라 은휼아!”

소년과 노승의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보부 상인으로 보이는 사내 두 명이 그들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주모 여기 국밥 두 그릇만 주쇼!”

 

음식을 주문한 사내가 자신에 앞에 앉은 이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도성은 언제부터 출입이 가능 할런지 모르겠구만”
“기다려봐 곧 있으면 다시 연다니까 그러네”
“아니 언제 열릴 줄 알고 기다리나! 그냥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다시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나? 어?”
“내려가긴 어딜 내려가 수도에 물건을 팔러 왔으면 팔고 가야지! 그게 우리 일 아닌가!”

남자가 자신의 옆에 내려놓은 커다란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맞은편에 있던 남자도 그의 말에 대꾸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봉쇄령이 떨어졌는데 언제 다시 풀릴 줄 알고 기다리나!”
“그럼 몇 날 몇 일을 이 짐을 짊어지고 걸어 왔는데 다시 돌아가라고? 자네 제정신인가? 아 몰라! 난 이 물건들 팔기 전까지는 절대 안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