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37화 [천적 3]

kaether 2023. 8. 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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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37화 [천적 3]


보부상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노승이 대화에 껴들었다.

 

“저기 실례지만 혹시 도성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봉쇄령이라니요?”

 

그러자 보부상 중 한 사람이 노승에게 대꾸했다.

 

“스님도 도성에 가시는 길이 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혹시 비보 사찰에서 지내고 계십니까?”
“예 맞습니다…”

 

순간 보부상들의 눈이 번뜩이며 둘은 무언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스님하고 같이 간다면…”
“아무리 봉쇄령이라고 해도 예외로 쳐주지 않을까?”

 

보부상 중 한 남자가 노승에게 다가오며 조심스레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스님… 실례지만 혹시 수도에 들어가실 때 저희랑 동행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시주라면 여기 이 물건들만 잘 정리되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풀어 놓은 보따리에는 주로 세공품, 사치품 등 장에 내놓으면 비싸게 팔리는 진귀한 물건 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들은 전국에 있는 온갖 진귀품들을 가져다 수도에 내다 파는 보부상들입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수도에 봉쇄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팔지도 못하게 됐지 뭡니까. 제발 부탁 드립니다. 스님!”
“그렇지만 오늘 봉쇄령이 떨어졌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헌데 저와 동행한다고 한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봉쇄령은…”

 

남자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성에서 새로운 임금님의 즉위식이 있을 예정이라 아마 스님께서 신보에 참여하는 승려라고 하시면 문제 없을 겁니다.”
“즉위식이요? 설마… 임금님이 돌아가셨습니까?”
“돌아가셨다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남자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노승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정확히는 반정이지요…”

 

남자의 말을 들은 노승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반정이라니요!”
“쉿! 소리 낮추십시요 스님! 혹여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그땐..”

 

남자가 조심스레 주변 눈치를 보는 동안 노승은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봉쇄령이 떨어진 것도 다 임금님이 시해되어서?”
“맞습니다. 스님! 임금님이 시해되고 새로운 임금님이 즉위 될 때까지 아마 봉쇄령도 계속 될 듯 합니다.”
“헌데 상인께서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보부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노승에게 말했다.

 

“사실 경비한테 돈 좀 쥐어주고 얻은 정보입니다. 저희가 행색은 이래 보여도 돈은 꽤 많거든요! 하.. 근데 들어가는 건 아무리 돈을 쥐어줘도 안된다네요? 아무튼 보아하니 스님께서도 어차피 비보 사찰로 가시는 길이신 것 같은데? 도성에도 들어가고 시주도 넉넉히 받고 이만하면 일석이조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 걱정 마십쇼 스님! 아까 듣기로 비보사찰에서 지내신다고 하시던데? 이번 즉위식의 신보도 어차피 비보 사찰에서 주관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스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비보 사찰로 돌아가는 길입니다.’라고 만 하시면 됩니다.”

 

보부상의 말대로 도성에 있는 신보(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 는 역사적으로 노승의 어릴 적부터 비보 사찰에서 줄곧 주관해 왔었다. 그렇기에 노승도 보부상에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강철이가 있는 곳으로 병력을 보내라는 왕의 서신을 전달 받은 종 3품 대장군의 지위에 있는 이의민은 수도에서 역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왕의 명을 받고 강철이 토벌에 합류하고 있었다.

 

“동이 트고 있다. 서둘러 가자!”

 

이의민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하늘을 보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쑥대밭이 되버린 마을과 마주하게 된 군인들이 수군거렸다.

 

“맙소사…”

 

이의민은 무너져 내린 성벽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의민의 휘하에 있는 장수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 마을이 이미 쑥대밭입니다”

 

부하의 말대로 마을은 이미 강철이에게 쑥대밭이 되어 버린 뒤였다. 그렇기에 이의민은 망연자실한 심정을 뒤로하고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혹시라도 생존자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전 병력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을…”

 

그때 이의민의 부하가 소리쳤다.

 

“대장군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이의민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말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초토화 되어버린 마을과는 대비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 내린 마을을 복구하는 듯 여기저기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구나… 천만 다행이야! 어서 빨리 우리도 증원하도록 하자!”
“예 대장군!”

 

이의민의 군대는 무너져 내리는 마을을 복원하며 현장에 있던 이주국 장군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의민이 병실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이주국에게 말했다.

 

“누워서 대답하게! 어떻게 된 일인가? 강철이는? 마을 자체에서 토벌한 것인가?”

 

이주국은 상처가 심한지 죽어 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이의민에게 말했다.

 

“그게 실은… 저희가 토벌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운이었지요…”
“하늘에서 도와주셨단 말인가?”
“예… 뭐 말하자면 깁니다…”
“내게 당시 상황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이의민의 부탁에 이주국은 힘겹게 그날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검게 물든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날이었지요…”


이주국과 사명대사, 강철이, 두억시니가 싸우던 그날.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끄아아아아앜앜카 화르르르-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라고 하기에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두억시니의 웃음소리. 비명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불꽃을 토해내던 강철이의 비명이 공존하던 그날 밤. 이런 일방적이던 싸움에 난입한 이가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도깨비의 형상으로 키가 무려 15척(조선시대 척 단위 31.1cm 기준) 이나 되었고 그의 한 손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대한 도깨비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도깨비는 두억시니와 강철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만~}

 

그러자 놀랍게도 그를 본 두억시니가 공격을 멈췄다. 그의 손에서 허공에 뱅뱅 돌려지던 강철이 또한 바닥에 패대기 치면서 말이다. 두억시니는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아니… 도깨비 왕 아니십니까! 이곳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대요?}

 

두억시니의 사나운 기세에도 불구하고 도깨비 왕은 여유롭게 그의 아니꼬운 말투에 응대하기 시작했다.

 

{또 이무기 사냥이냐 두억시니?}
{또라뇨? 요새 제 뒷조사하고 다니시나 봐요? 그런 것도 알고}
{뭐… 이무기 사냥이라면 내 말리지는 않겠다만 그래도 이렇게 마을을 초토화 시키는 건 안되지!}
{흥! 하시던 중촌이나 잘 지키시지! 이제는 하다 하다 인간들 마을까지 관여하십니까? 아이고… 오지랖도 넓으셔라!}
{오지랖이라니 이건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두억시니는 도깨비 왕의 말을 끊으며 대꾸했다.

 

{아! 시끄럽고 여기 온 용건이나 말하세요! 한참 재밌었는데}
{말하려 하는데 네놈이 끊었잖냐!}
{아! 눼에~ 눼웨~ 저는 이제 조용히 할 테니 마저 말씀하시죠~}
{이.. 새끼가 진짜…}

 

{…}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기 싸움! 이것은 언뜻 보면 유치해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평화적인 관계를 추구해 왔던 도깨비 왕과 인간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요괴들 만을 위하는 두억시니의 가치관을 두고 벌이던 오랜 관념의 차이였다.

 

그렇기에 현(現) 도깨비 왕은 새로운 도깨비 왕이 될지도 모르는 두억시니에게 매번 훈계 아닌 훈계와 사상의 강요와 별개로 많은 것을 가르쳐 왔었다. 그 시간은 자그마치 200년 동안 계속되었고 시간이 흘러 이들의 관념의 차이는 지금에 이르러 만나면 서로 으르렁 거릴 정도로 틀어져 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두억시니는 두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첫째! 도깨비 왕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차기 도깨비 왕이 두억시니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그를 가르쳐 왔었다. 이것은 평소 츤츤거리는 도깨비 왕의 표현의 방식이었다.

 

둘째! 사실 도깨비 왕은 인간에게 그리 우호적인 성향은 아니다. 다만 중립을 지킬 뿐이다. 이유는 도깨비 왕만이 알고 있는 남모를 고충이었다. 도깨비 왕이 되면 염라국에서는 차사를 보내 도깨비왕에게 서신을 전달한다. 서신의 내용은 중촌에 있는 죽은 요괴들의 영혼들의 향후 처사에 관한 내용과 이승을 떠돌고 있는 원귀와 같은 인간들의 영혼은 물론 요괴의 영혼들을 염라국으로 인도 받을 수 있게 하라는 협조문이다.

 

사실 말이 협조문이지 실상은 협박문에 가까웠기에 도깨비 왕이 된 자는 남몰래 이를 지켜야 한다. 만일 이를 지키지 못하고 요괴와 인간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져 차사 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혼들이 이승을 배회하게 된다면 그것은 염라국의 분노를 사게 되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렇지만 이 비밀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도깨비왕의 사명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도깨비 왕은 두억시니에게 이를 돌려서 말해주고 싶었다.

 

곧이어 침묵을 깨고 도깨비 왕이 두억시니에게 말했다.

 

{너 그러다 저승사자한테 혼난다?}

 

하지만 도깨비 왕의 말을 들은 두억시니는 그의 말뜻을 잘못 이해하여 이렇게 받아 들였다.

 

‘뭐? 저승사자? 지가 저승사자라는 거야 뭐야? 아니.. 가만 그 말은 저승사자 = 죽음 이 말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건가? 아니 왜? 고작 인간들 때매 나를?’

 

두억시니는 아까보다 더욱 스산한 투기를 두르며 도깨비 왕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얼마 전에 인간들 마을을 건드렸다고 해서 오신 것 같은데… 제 말이 맞죠?}

 

도깨비 왕은 츤츤거리는 말투로 답변했다.

 

{그래! 너 자꾸 인간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라? 적당히 해라 쫌! 그러다가 진짜 큰일난다?}

 

두억시니는 실성한 듯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당신은 옛날 부터 그랬어! 자기도 요괴면서 요괴보다 인간들을 우선시 하는 그런 요괴… 나는 당신과 달라!}

 

두억시니의 거대한 양손의 환영체가 도깨비 왕을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투확-

 

두억시니의 거대한 양손의 환영체가 서로 맞닿자 공기가 으스러질 정도의 파장이 진동했다. 흡사 모기를 잡을 때 전력으로 손뼉을 쳤을 때의 모습이지만, 그 크기와 위력 하물며 그의 양손의 두른 투기는 자연재해라 불릴 정도의 위력과 맘먹었다.

그러나 간발에 차로 두억시니의 공격을 피한 도깨비 왕은 어느새 두억시니의 측면으로 다가와 자신의 도깨비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고 있던 찰나였다.

 

{아직 멀었구나…}

 

-투콰앙~-

 

가공할 위력의 방망이질로 인해 폭풍을 흩날리자 태산도 무너뜨릴 것만 같은 파장이 주변에 메아리쳤다. 공격에 맞은 두억시니는 도깨비 왕이 가격한 지점에서 부터 저 ~ 멀리 아주 멀리 가공할 풍압을 일으키며 날아가 버렸다.

 

-퍼퍼퍼펑-


한편 이들의 결투를 멀리서 동시에 지켜 보고 있던 이들이 있었으니..

 


-강철이 시점-

그들 중 하나는 강철이 였다.

강철이는 두억시니와 도깨비 왕이 싸우고 있는 틈을 타 어느새 멀리 도망치고 있던 중이었다.

 

{저런 미친놈들… 하여간 피는 못 속인 다니까!} ┘

 


-길달 시점-

또 다른 이는 수도에서 비형랑이 보낸 길달이었다.

 

{아니… 강철이는 어디가고 두억시니랑… 저 도깨비는?… 설마 도깨비 왕? 대장한테 빨리 알려야 돼!} ┘

 


-이주국 과 사명대사 시점-

사명대사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도 안되는 싸움을 지켜보며 말했다.

 

“저게 정녕 요괴들의 싸움이란 말입니까…”

 

그런 그를 부축하며 이주국도 숨을 죽이며 대꾸했다.

 

“이제 저 요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저희의 운명이 정해지겠군요…” ┘

 


-또 다른 도깨비의 시점-

 

잠에서 깼는지 누워있던 한 도깨비가 자리에 앉으며 도깨비 왕과 두억시니가 있는 곳을 응시하며 짜증과 귀찮음이 섞인 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시끄러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