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꿈의 유산 : 악몽을 걷는 자

5화 꿈의 유산 : 악몽을 걷는 자 [8자 놀이 1]

kaether 2023. 7. 30.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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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꿈의 유산 : 악몽을 걷는 자 [8자 놀이 1]



8자 놀이 : 술래를 정해 쫓고 쫓기는 놀이

 

어린 시절 우리들은 8자 놀이라는 것을 즐겨 하곤 했다. 8자놀이란 간단하게 말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의 무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규칙.

  1. 가위 바위보로 술래를 정한다.
  2. 술래는 강이라 지칭한 곳 바로 앞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크게 외치고
    열까지 센뒤 멀리 달아나는 다른 사람을 잡으러 간다.
  3. 술래는 다른 사람을 잡으러 다니는데 8자 모양의 끝에 위치한 두곳의
    강은 건너지 못한다. (술래 외에 다른 사람은 강을 건널 수 있다.)
  4. 술래에게 잡히면 죽는다. 금을 밟거나 금 밖으로 손이나 발이 나갔을 때도
    죽어서 술래가 된다.

베갯잇에 베인 나의 어린 시절, 우리는 꿈을 자유자재로 꿀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꿈은 우리를 점점 악동으로 변모시키는데 일조했다. 나의 어린 날들은 언제나 밤의 친구들을 괴롭히며 흥분하던 시간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영호의 절규 소리가 퍼져 나갔다. 루시는 영호가 상상속에서 그리던 창경원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형형색색 아름답게 핀 꽃들이 있어야 할 곳에는 가시 덩쿨과 그 사이로 기어다니는 뱀들이 득실거렸고, 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는 말라 비틀어진 동물들의 사채들이 여기저기 나 뒹굴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루시가 벌인 일이었다.

곧이어 눈 앞에 펼쳐진 과경을 보고 충격에 빠진 것은 영호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이모든 것이 꿈이라고는 하나 타인의 악몽을 직관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루시..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그만해”
“왜? 이제 막 재미있어 질 라고 하는데. 재밌지 않아? 아까는 재밌어 하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어차피 꿈인데 뭐 어때”
“그래도 이건 아니야..”
“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야.. 칫. 이제 와서 너만 착한 척 하기야? 분명 말하지만 이곳의 문을 연건 너야! 코그마. 게다가 이 일대 꽃밭을 가시덩쿨로 바꾸자고 한 것도 네가 한 말이잖아”

 

루시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사실 나 역시도 영호를 괴롭힐 생각에 잠시 들떠 있었던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이 광경을 만드는데 일조 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뭐랄까..

 

해도 해도 너무 과했다. 타인의 꿈을 이토록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 수 있다니.. 순간 덜컥 겁이 나며 나는 루시를 말리기 시작했다.

 

“루시…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는 서둘러 루시에게 그만하자 재촉하기 시작했지만 루시는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이제 막 재밌어지려고 하는데”
“루시.. 제발…”

 

나의 진심어린 부탁이 통해서 였을까. 루시는 의외로 쉽게 승낙하며 대꾸했다.

 

“알았어!”
“진짜?”

 

루시의 답에 안도하던 찰나 이어지는 루시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귀를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가시 덩굴만 없애면 되는 거지?”
“뭐라고?”

 

곧이어 펼쳐지는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쿠르르르릉

 

루시의 말에 하늘이 컴컴해지며 주변 일대가 나무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나의 앞에는 가시 덩굴 대신 말라비틀어진 나무들 사이에 만개한 봉숭아 꽃들이 나타났다. 가시 덩굴이 있던 자리에는 붉은 색 꽃들이 피어났고, 그 사이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나운 뱀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루시…”

 

겁에 질린 나와는 달리 루시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밝아 보였다.

루시의 해맑은 표정을 보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건 왜였을까

 

분노, 짜증, 두려움 혹은 왠지 모를 흥분과 쾌감이 내안에 공존하며 나는 결국 이날 루시의 장난을 말릴 수 없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타인의 꿈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일이라니…

 

그날 이후 나는 처음 망설였던 때와는 달리 어느새 나는 루시를 따라 타인의 악몽에 관여하는 장난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처음 영호를 악몽에 빠지게 한 시점부터 우리들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다른 친구들의 꿈에 관여하는 장난을 치기 시작하며 심지어는 어른들의 꿈에까지 관여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의 꿈속.
선생님의 꿈속.
슈퍼 아주머니의 꿈속.
옆집 아저씨의 꿈속.

 

친구들은 물론 어른들. 그들은 우리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꿈속에서 나와 루시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고, 전지전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어느덧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수업을 끝마치고 집에 가는 길.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루시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나란히 들려 왔다.

 

“아 심심해~ 어디 뭐 재밌는 일 없나? 다른 사람 괴롭히는 것도 이젠 지겨운데”

 

그 동안 루시는 타인의 악몽을 가지고 노는 것의 신물이 났는지 나를 힐끗 바라보며 제안을 해왔다.

 

“코그마! 우리 그거 할까?”
“그거라니.. 설마 또?”

 

루시가 말한 제안은 자각몽을 꿀 수 있는 자들끼리 꿈에서 맞붙는 것이었다. 물론 루시와 나 이외에 자각몽을 꿀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루시의 장단을 맞춰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 루시와의 대결에서 단 한번도 이겨 본적이 없다. 그러니 언제나 패자의 입장에 처한 나로써는 그리 재밌는 일은 아니었다.

 

“됐어.. 어차피 또 네가 이길텐데 안해”
“혹시 알아 오늘은 코그마 네가 이길지?”
“어제 그렇게 다른 애들 꿈에서 괴롭히고도 아직도 직성이 안 풀렸어?”
“다른 애들 꿈 가지고 노는 건 이제 재미 없단 말이야. 너처럼 자각몽을 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 모를까”

 

나를 치켜세우듯이 말하는 루시의 뉘앙스. 그렇지만 꿈속에서 루시는 나보다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 보고 있었기에 이것이 나는 루시의 꾀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짧고 간결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싫어”

 

나의 짧은 답변에 토라진 루시. 루시는 내게서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칫. 재미없어..”
“그래 나도 알아. 나 재미없는 거”
“아니.. 너는 남자가 되서 승부욕도 없냐?”
“승부욕이 없는게 아니라 어차피 너한테 이겨 봤자 나한테 득 될게 없다는 거지. 괜히 다음날 피곤하기만 하고 말이야”

 

매번 느끼는 거지만 루시와 꿈속에서 대결을 한 다음날은 유독 하루 종일 피곤했다. 그러니 꿈속에서 루시와의 대결 만큼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거부한다고 한들 루시가 내 꿈으로 침입하지 않는 다는 전제가 없는 한 불가능 한일. 나는 오늘도 나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할 뿐이었다.

 

곧이어 루시는 포기했는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여간에 그 고리타분한 말투는.. 누가 너를 8살로 보겠냐? 솔직히 말해봐 너 인생 2회차로 환생한 거지?”
“환생은 무슨… 꿈꾸는게 뭐가 대수라고”
“알았어.. 그럼 우리가 8살이니까 오늘은 8자 놀이다.”
“뭐..무슨…”

 

루시는 그 말을 남기고 내가 대답할 새 없이 멀리 뛰어 가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나의 귓가에는 달려가는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코그마 그럼 이따 밤에 봐~”

 

뛰어가는 루시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밤도 루시에게 놀아나게 될 것을 직감했다.

 

에휴… 내 팔자야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나는 거울을 보며 다짐했다. 거울속의 비춘 나의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반면에 눈밑을 덮은 그림자 하며, 나의 얼굴은 왜인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듯 사뭇 진지했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매일 밤 루시에게 시달릴 것은 자명한 사실. 오늘에야 말로 결판을 내야 한다.

“오늘은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어”

 

꿈속에서 루시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생각을 하며 나는 이날도 365번째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다.

 

ZZZZZZ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이날 나는 그 방법을 택했다.

 

나의 눈앞에는 루시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하얀 공간으로 이루어졌어야 정상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든 루시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문 만큼은 항상 칙칙한 색을 띄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날도 루시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문은 칙칙하다 못해 왠지 모를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막상 루시의 꿈속으로 먼저 들어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이렇다니…

순간 머릿속으로 나를 겁쟁이라 놀리던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오늘은 기필코 내가 이길거야”

 

그동안 루시에게 도전하다 패했던 지난날의 울분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에이~ 몰라”

 

결국 나는 두눈을 찔끔 감으며 루시의 꿈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