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꿈의 유산 : 악몽을 걷는 자 [악몽의 개시 2]
선생님의 말을 듣고 놀란 것은 친구들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아마 이들 중 제일 놀랐던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 분명했다.
영호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순간 어제 꾸었던 꿈이 스쳐 간 것은 왜였을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설마.. 진짜로?
영호가 다친 것이 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설사 내가 꿈속에서 영호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 절대로 현실이 아니다. 게다가 어제 내가 꿈속에서 했던 짓은 인형의 다리를 찢어 버린 것 뿐이지 실제로 영호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은 이 죄책감은 왜일까
나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인형의 다리를 찢어 버린 것 뿐인데
.
.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할까 말까 하루 종일 속으로 끙끙 앓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씻는 동안에도 머릿속의 영호의 일이 떠나가지 않았다.
결국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고 잠을 뒤척이던 나는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실토하기로 마음 먹었다.
“할머니..”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왜 아직도 안자고 있어? 잠이 안 와? 할미가 자장가 불러 줄까?”
“아니.. 오늘.. 영호가 유치원에 오는 길에 다리를 다쳤대”
“아이고~ 그래서 우리 강아지가 기분이 하루 종일 안 좋았구나?”
할머니는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던 듯 보였다.
할머니는 나를 꼬옥 안아 주시며 말했다.
“영호가 걱정돼서 그래? 친구 걱정도 하고 우리 코그마 이제 다 컸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할머니에게 어제 꾸었던 꿈을 말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렇지만 할머니에게 만큼은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 꿈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사실은… 내가 어제 꿈을 꿨거든? 꿈에서 곰돌이 인형이 있길래 순간적으로 영호 생각이 나서 곰돌이 인형을 영호라고 생각하고 다리를 부러 뜨렸어”
“다리를? 아이고..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아니.. 어제 영호가 자꾸 다음 주에 부모님이랑 같이 창경원으로 놀러 간다고 자랑하잖아. 그리고 또.. 아파트도 모른다고 막… 놀리고”
“그래서 영호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거니? 영호가 얄미워서?”
“얄미웠던 건 맞지만 진짜 영호가 다리를 다칠 줄은 나도 몰랐어”
말하는 내내 할머니가 나를 혼내지는 않을까 하며 조마조마 했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내가 당시 겪었던 일과 꿈에서 느꼈던 심정을 할머니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렇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기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어차피 꿈인데 뭘 그래”
“아니.. 그래도 내가 꿈속에서 영호를 생각하고 인형의 다리를 부러 뜨린건 사실이란 말이야”
“영호 다리가 부러진 건 우리 강아지가 꾼 꿈 때문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정말? 나 때문에 영호가 다친게 아니라고? 꿈속에서 내가 영호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도?”
“물론 꿈에서 영호의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나쁘지만 실제로 영호의 다리를 부러 뜨린건 우리 강아지가 아니잖니. 게다가 정말 영호가 다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잖아. 그치?”
“응… 나도 영호가 다칠 줄은 정말로 몰랐어. 진짜야 정말로”
“그래 그래 할미도 네 맘 다 안다. 우리 코그마는 착한 아이니까”
할머니의 말에 그제서야 안심이 놓인 나는 할머니에게 몇 번이고 내가 죄가 없다는 것에 대해 되 물었고, 몇 번의 대답을 받고서야 그제서야 죄책감이 사그라 들었다.
나는 문득 궁금한 것을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꿈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이 아니지?”
“당연하지! 꿈하고 현실을 다르니까”
“그럼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꿈에서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면 어떻해?”
“꿈에서 안 좋은 일? 왜 요새 우리 강아지.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평소 꿈이라는 것을 늘 자각하던 나로써는 악몽이란 것을 단 한번도 꿔 본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질문을 할머니에게 했던 것은 할머니는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해서 였다.
할머니는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하잖아. 할머니는 안 좋은 꿈꾼 적 없어?”
“음.. 할미도 어렸을 때는 안 좋은 꿈을 많이 꾸긴 했지”
“정말? 할머니도 안 좋은 꿈을 꿨다고?”
“그럼.. 꿈이라는 것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아직까지 안 좋은 꿈 꿔 본적 없는데? 그럼 나도 나중에 할머니 처럼 안 좋은 꿈 꿀 수도 있겠네?”
“아이고 우리 강아지 무서운 꿈 꿀 까봐 걱정돼서 그래?”
“걱정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아직 무서운 꿈을 꿔 본적이 없어서… 많이 무서워?”
나의 질문에 할머니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꾸했다.
“글쎄다.. 이 할미도 하도 오래돼서 말이야.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던 것 같구나”
“그래도 혹시라도 꾸면 어떻해”
“아이고~ 우리 강아지. 그게 그렇게 걱정돼? 무서운 꿈 좀 꾸면 어때 어차피 꿈인데”
“그치..”
할머니의 대답에 나는 악몽을 꾸는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럼 안 좋은 꿈을 꾸는 이유는 뭐야?”
“음.. 글쎄다.. 아마 마음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데 왜 안 좋은 꿈을 꾸는 거야?”
“마음이 아프면 꿈에서도 괴로울 수 있는 거란다. 자고로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듯이 무서운 꿈을 안 꾸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돼”
“그럼 안 좋은 꿈을 안 꾸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일단 무조건 잘 먹고 잘 커서 건강해져야지! 그러니까 우리 강아지도 잘 먹고 잘 크면 무서운 꿈 같은 건 꿀일 없단다.”
“치이~ 거짓말..”
할머니의 대답은 내 궁금증을 해소 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은 내가 상상하는 꿈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눈치도 빨라라.. 사실 할미도 안 좋은 꿈을 왜 꾸는지는 잘 모른단다. 그치만 이것 만은 알고 있단다. 꿈이라는 것은 말이야 좋은 꿈이든 안 좋은 꿈이든 언젠가는 깨게 되어 있는 거란다. 그러니까 우리 강아지도 어제 꾼 꿈은 이제 그만 잊어 버리고 이제 그만 코~ 자자. 내일도 유치원 가야지”
“응.. 알겠어”
할머니의 말에 나는 꿈이라는 것에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꿈은 꿈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몇 일 뒤
할머니 덕분에 기운을 차린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서 벗어나 평범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깁스를 한 채 퇴원한 영호와 부딪히기는 했지만 그 전처럼 크게 다투는 일은 없었다.
그 소녀를 만나기 전 까지는
“우와~ 이게 기부스라는 거야? 되게 딱딱하다”
한 친구가 영호의 다리에 씌어진 깁스를 메 만지며 신기해 하자, 영호는 손으로 코를 쓰윽 한번 훑더니 자랑스럽다는 듯이 애기 했다.
“부럽지? 너도 부러우면 병원가서 해달라고 해!”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깁스를 한 게 무슨 자랑이냐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5살 시절의 우리들은 영호의 다리에 두른 깁스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부럽다며 깁스를 차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말이다.
= 띵~ 동~ 댕~ 동~
곧이어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 오셨다.
“자 여러분 오늘은 새로운 친구가 왔으니까 모두 반갑게 맞아 주세요”
선생님의 옆에는 검은색 단발머리를 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심연과도 같이 깊고 어두운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이국적인 외모. 그러나 입가에는 뭔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 소녀. 나는 그녀를 보자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을 느낀 동시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나는 그날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소녀는 아이들에게 장난 섞인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 내 이름은 루시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
.
.
그날 밤
“하~”
잠자리에 누운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한마디도 못했네..”
평소에도 낯가림이 심한 성격 탓에 결국 루시에게 한마디도 못 걸어 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게다가 평소에도 나를 놀리지 못해 안달 난 영호 녀석이 나보다 루시에게 먼저 말을 걸다니..
평소에도 얄미웠지만 오늘 따라 유독 영호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아직 시간은 많다.
내일도.. 앞으로도.. 루시와 친하게 지낼 기회는 많다 생각하며 나는 잠에 빠져 들었다.
ZZZZZZ
안개 낀 우거진 숲 속. 흐려진 노을 너머로 보이는 정체 불명의 탑. 내 앞에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뻗어있는 가시 덩굴들이 보였다. 나는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져 있는 검은 숲을 바라 보았다.
“뭐지…”
평소에도 꿈을 자주 꾸고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꿈에 대한 자각을 해 오던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 보는 광활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어차피 내 꿈속이니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검은 숲을 바라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심심하던 찰나에 잘 됐다 생각하며 저 멀리 보이는 탑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불친절 하게 뻗어있는 가시 덩굴들을 지나며 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꿈에서 이렇게 오래 걸어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꿈이었으니 힘들지는 않았다.
곧이어 깊은 숲 속으로 들어 서자 나의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캄캄한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풀숲이었다. 이제 나의 앞에는 그나마 있던 흐린 노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어두워졌다.
주변에는 성인 키 만큼 자라나 있는 우거진 풀들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빼곡히 둘러싼 나무들 천지였다. 게다가 오늘 따라 왠지 모르게 스산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캄캄한 어둠을 보자 순간 불이라도 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꿈속인 걸 알고 있는 이상 무서울 것은 없었다.
“에휴.. 그냥 가자”
그때 수풀 속에서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스스스스스스
황급히 고개를 돌려 풀숲에서 검은 그림자가 내게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던 찰나.
누군가 풀숲에서 튀어 나오자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 너는.."
루시?
검은 숲에서 뛰쳐 나온 것은 놀랍게도 루시였다.
아침에도 봤지만 설마 꿈속에서 까지 나타날 줄이야.. 이건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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