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5화 [원귀]

kaether 2023. 7. 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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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5화 [원귀]


그림자 놀이

 

사람 또는 동물의 모양을 불빛으로 흰 막이나 흰 벽 위에 비치게 하여 움직이는 그림자가 나타나게 하는 흔한 놀이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
커다랗게 하늘에 뜬 달빛은 왜 이리도 이쁜지
혼자인 것도 잊게 만드는 시원한 밤 공기를 들이 마시니 이내
공허함이 가시는 듯하다.
흐르는 달빛이 내게 선물 해준 그림자는
내 곁에 있다 가도 없으며 없다 가도 있었으니
오늘도 내 옆을 지켜 주는구나
달빛에 비친 우리는 그렇게 밤새 서로를 흉내 내며 놀았다.


어둑시니에게 삼켜진 그날 이후 소년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스님 스님 이것 좀 보세요!”

 

소년은 모닥불에 비춘 자신의 그림자로 늑대를 만들어 보이며 노승에게 말했다. 노승은 그런 소년을 보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래~ 은휼아 아주 멋진 늑대로구나”
“네 늑대예요 무시무시하죠”
“그렇구나 허허허”

 

소년이 만들어낸 늑대의 모습은 아주 조그만한 그림자 늑대였다. 자신의 손가락을 꼬아 빛에 비춰 만든 흔한 그림자 놀이! 물론 처음 소년이 그림자 늑대를 만들어 냈을 때는 노승은 소년의 재주를 보고 놀랐다. 그렇지만 이내 그 재주가 산속에서 혼자 있기 싫어 소년이 즐겨하던 놀이였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리 유쾌하지 많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녀석.. 산속에서 그동안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 꼬… 가엾은 것..’

 

노승과 소년은 늦은 밤 산속에서 지금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숙영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소년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고 길을 보채 노승은 소년과 길을 나선 것이었다. 노승은 모닥불 앞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은휼아 너가 살던 곳으로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소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제가 계곡을 따라 흘러 왔으니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될 거예요”
“그래 너가 왔던 길이니 너가 잘 알겠지..”

 

해맑은 소년의 얼굴과는 대조되게 노승은 소년에게 말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사실 노승은 지금 소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의원에게 들은 뒤로 생각이 많아졌다.

 

‘걱정이구나 이런 산속에서 숙영이라니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만 행여 은휼이의 기가 허해 또 잡귀들이 나타나 헤하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은휼아 오늘은 이만 자거라 내일도 한참을 걸어야 하니 피곤 할 게야”
“네 ~ 스님”

 

소년은 그 말과 함께 모닥불 앞에 자리를 잡고 곤히 잠에 들었다.

 

‘그래 은휼아.. 힘들었을 텐데 안심하고 푹 쉬거라! 이 늙은이가 옆에 있으니’

 

노승은 눈을 감고 묵주를 감으며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소년과 노승은 하루 종일 산길을 오르느라 피곤했다. 그들도 그럴 것이 한 명은 아직 6살 남짓 된 어린아이와 또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으니 이들에겐 오늘 하루도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단잠에 빠진 둘은 산속에서 잠을 청하였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산은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어린이와 늙은 노인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스스스스스-

 

그 증거로 스산한 기운이 이들을 두고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취하겠어!”
“아니야 내가 취할거야”
“아니 내 차례야!”

 

소년과 노승을 두고 온갖 잡귀와 악귀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으으으…”

 

그러자 스산한 기운에 눈을 뜬 소년은 온갖 잡귀와 악귀들을 초점이 없는 눈으로 바라 보자 잡귀들이 외쳤다.

 

“꼬마가 일어났다. 지금 덮칠까?”
“글쎄 어떻 할까?”

 

그러자 잡귀들이 다투는 와중에 가장 덩치가 큰 악귀가 말하며 나섰다.

 

“꼬마와 늙은이 하나 가지고 뭘 생각해 그냥 내가 다 잡아먹는다!”

 

악귀는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 보고 있는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르르르-

 

악귀의 손이 소년에게 점점 가까워져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악귀가 소년에게 손을 갖다 대었을 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소년의 몸에서 검은 형체가 나와 악귀를 집어 삼켜 버린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악귀는 비명을 지르며 검은 형체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삼켜졌다. 이어지는 스산한 목소리는 자신들을 둘러싼 악귀들에게 향했다.

 

“너희들 나쁜 놈들 이구나”

 

소년이 초점이 없는 눈으로 악귀들을 쏘아보며 말한 것이었다. 소년의 말과 함께 이어지는 소년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펼쳐지며 그 일대의 온갖 잡귀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사.. 살려줘”
“사사살려줘…”

 

마지막 남은 악귀 하나가 소년에게 빌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미안해 다시는 근처도 얼씬… 으아아아”

 

이어지는 비명을 끝으로 소년은 악귀의 말을 못들은 것인지 소년의 그림자는 남은 악귀 마저도 마저 삼켜버렸다.

 

“나쁜 놈들 내가 다 혼내 .. 줄 거야..”

 

소년은 잠꼬대를 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스스스륵-

 

스산한 기운에 눈을 뜬 스님은 이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스산한 기운과 는 달리 옆에 있던 소년은 고이 자고 있었고 아까 느꼈던 음침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주변은 평온하였다.

 

‘기분 탓인가..’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각성한 소년은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소년과 노승의 여정은 산을 오르고 밤에 숙영을 하는 것 외에는 그들을 위협하는 산짐승도 온갖 잡귀도 그들 근처에 접근 하지 못했다. 물론 소년이 자는 중에 그림자가 온갖 것을 삼키다 보니 소년의 기가 강해 진 것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노승은 소년이 점차 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은휼이의 기가 전보다 강해 진 것이 이제 몸이 회복되고 있는 듯하구나’

 

노승은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소년의 기가 강해 진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노승은 앞서 뛰어가는 소년에게 물었다.

 

“은휼아 이제 몸은 괜찮으냐?”

 

그러자 소년은 뒤따라 오는 노승을 돌아보며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씩씩 하게 말했다.

 

“네 스님 그럼요! 말짱해요!”


그날 밤도 일행은 숙영을 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 산속에 위치한 허름한 집을 발견하였다.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해 보여 폐가처럼 보였지만 집안 여기저기에는 살림살이의 흔적이 있는 것이 사람이 사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계십니까?”


노승은 주인을 불러 보았다.

 

-쨍그랑-

 

노승이 부르자 그때 부엌에서 쨍그랑 소리가 나며 사람 하나가 급히 뛰쳐나왔다.

 

“아이고야 ~ 손님이 다 오시고 이 누추한 곳에”

 

허름한 차림의 중년의 여성이 일행을 반겼다. 중년의 여성은 허름한 차림에 등에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노승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주인은 스님을 반기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스님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실례지만 산길을 오르는 길에 밤이 깊어 그러는데 오늘 하루만 신세를 좀 질 수 있을까 찾아 왔습니다.”

 

노승은 정중히 앞선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에게 부탁해 보았다. 노승의 옆에선 소년은 같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며 거들자 주인은 흔쾌히 그들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아 그럼요 들어 오세요 식사는 하셨나요? 시장하시죠? 집이 누추해서 대접해 드릴 것은 없지만 잠시만 앉아 계세요 금방 찬을 내올게요”
“하룻밤 재워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아유 괜찮아요~"

 

여자는 연신 괜찮다는 일행들의 말을 듣고도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자는 일행들에게 밥상을 내오며 식탁에 걸터 앉았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진수성찬을..”

 

밥상에는 밥과 함께 나물들을 절여 만든 반찬이 서너 가지 차려져 있었다. 배고픈 이들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소년이 크게 말하며 정신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노승도 여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수저를 들었다. 여자는 소년이 먹는 것이 복스러워 보였는지 사랑스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많이 먹어라 아가!”
“아..네..”

 

소년은 왜인지 집 주인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승이 입을 열었다.

 

“다른 분은 지금 안 계시나 봅니다.”

 

스님은 여자에게 짐작하듯이 둘러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러자 여자는 살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방안에 저희 애가 자고 있어요. 산속에서 저와 우리 아이 이렇게 둘이 산답니다. 호호호”

 

어느새 집 주인의 등에는 보자기로 들쳐 업고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까지 노승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집주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 스님 우리 아이 한번 보실래요?”
“아..아닙니다. 자고 있을 터인데 굳이 깨우시지 않으셔도…”
“기다려 보세요”

 

집주인은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아기를 깨웠다.

 

“아가~ 아가~ 손님 오셨다 ~ 잠깐 나와볼래?”

 

집주인 여자는 아기를 부르며 이내 품 안에 이불 보따리에 덮인 아기를 소중히 안으며 나왔다. 여자는 이불 보따리에 싸맨 아기를 노승에게 보이며 물었다.

 

“저희 애예요 이쁘죠?”

 

….

 

잠시 후 노승은 놀란 가슴을 추스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예… 예쁘……..네요..”

 

노승은 이불에서 고이자고 있을 아기를 예상하고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불에 싸여있어 몰라 봤지만 자세히 보니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목각 인형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곤히 잠이 들었나 봅니다.”

 

노승은 당황하지 않고 이내 말을 이어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 하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소년도 들뜬 목소리로 궁금해하며 말하자 노승은 당황했다.

 

“저도 저도 볼래요”

 

당연히 노승은 딱 잘라 소년을 제지 하며 말했다. 소년이 놀랄 것을 예상했기에

 

“은휼아 아이가 자니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다시 인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나 여자는 노승에 말에 손사래를 하며 소년에게도 아이를 들이밀어 보여 주었다.

 

“아니예요~ 얼굴 한번 보여 준다고 뭐 닳기라도 하나요? 아가 너도 우리 아이 한번 볼래? 호호호호”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소년은 결국 들뜬 마음으로 아기를 바라 보게 되었다.

 

“우와 ~ 아기 처음 보는데…”

 

아기를 보자 소년은 싸한 기분을 느꼈다. 소년이 예상했던 아기의 모습과는 멀게 아기의 피부는 나무같이 까맣고 생기라고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한 목각 인형이었다.

 

소년은 아기를 보고는 이내 노승을 조심스레 쳐다 보았다. 소년과 눈이 마주친 노승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에 소년이 눈치채고 여자에게 말했다.

 

“아기가 곤히 잠들었네요 하하하”

 

소년의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고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집주인 여자 였다.

 

“아! 내 정신 좀 봐 피곤들 하실 텐데 어여들 먹고 주무세요 ~ 방에는 제가 이부자리 좀 준비해 놓을 테니까 천천히 잡수시고 주며셔요 들~”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품 안에 안은 인형을 데리고 자리를 일어서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노승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소년을 보고는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은휼아 잘했다.”

 

그러자 노승이 예상한 듯 소년의 반응은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조심스레 소년이 입을 열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스님.. 아까..아이가 아니라 … 제가 본 것이..”

 

소년이 노승을 보고 말을 잇자 노승은 고개를 저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쓸 때 없는 말은 삼가라는 취지의 행동이었다.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하자꾸나 은휼아!”

 

다행히 소년은 어린 나이 못지 않게 그의 의중을 눈치 채고는 조용히 그에게 답했다.

 

“네 스님..그래야죠..”

 

그렇게 그들의 조금 이른 밤이 시작되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