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 소년

그림자 소년 26화 [각자의 길 2]

kaether 2023. 8. 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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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년 26화 [각자의 길 2]


해태

 

몸은 거대한 범과 같으며, 목에는 구름 같은 갈기의 형상을 두르고, 그의 얼굴은 거대한 뿔이 달린 것 같은 가면의 형상을 띄고 있다. 해태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데, 해태는 이러한 통찰력으로 악인을 판가름하여 악인은 들이받고 의인에게는 도움을 준다. 또한 올바른 길을 목표로 하는 자에게는 자신의 시험을 통해 판가름 한다.

소년이 눈을 뜨자 주변은 뿌연 안개를 가득 메운 어느 깊은 산기슭 속 이었다. 해태는 소년을 보며 말했다.


{준비는 되었느냐!}

 

해태는 근엄한 말투로 소년을 노려보며 묻자, 소년은 잔뜩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네! 준비 되었습니다.”
{시험은 간단하다. 너는 이곳에서 멀구슬 나무 잎사귀를 따다 나에게 가져 오면 된다.}

 

 

“그게 끝 입니까?”

 

소년은 당황스러웠다. 어떤 어려운 관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내심 잔뜩 긴장하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건 만… 해태가 말한 시험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다.

 

{왜 그러느냐? 포기하겠느냐!}
“아… 아닙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네가 가져오는 멀구슬 나무 잎사귀를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소년은 해태가 덧붙인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 없이 쉬운 난이도에 이제는 조금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그걸 어디다 쓴다고…’

 

소년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심 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멀구 나무 잎사귀를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멀구 나무 잎사귀는 영험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잎사귀 이니라! 그 효능이 어찌나 영험한지 그 잎사귀를 빻아 상처에 바르면 씻은 듯이 낫게 되고 몸은 방금 씻은 듯이 청결하게 해주는 …}

 

해태는 멀구 나무 잎사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며 그것에 대한 효능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해태를 보며 소년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내심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소년의 머릿속에는 처음 해태를 마주했을 때의 느껴졌던 그 압도감은 온데 간데 없이 느껴졌다. 어쩌면 해태는 그저 거대한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해태님은 사실 고양이가 아니실까… 귀여우시네..’

 

하지만 소년은 해태의 숨겨 진 의도를 이때까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은 온갖 요괴와 영물들이 가득한 영산으로 오직 강한자들 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은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약한 요괴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

 

어느덧 시험이 시작되고 소년은 안개가 자욱한 산기슭을 뒤지며 멀구 나무를 찾아 한참을 걸어 다녔다.

 

“안개가 자욱해서 나무들이 잘 안 보여…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이래서 해태님이 시험으로 내건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가긴 가네…”

 

그때였다.

 

소년의 귓가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스륵 스스스-

 

소년은 긴장하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조심스레 살펴 보았다.

안개가 짙어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곧이어 나무 뒤에 가려진 커다란 형체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형체는 나무 뒤에 숨은 채로 쇠를 긁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 ~ 무엇을 그리 찾고 있니?}

 

소년의 귓가에 들려온 쇠를 긁는 목소리는 등가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였다. 소년이 언젠가 겪은 적이 있던 기운이었지만 지금은 멀구 나무 잎사귀를 찾는 것이 중요하므로 소년은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아… 저는 멀구 나무를 찾고 있는데요… 혹시 아시나요?”
{그럼 ~ 알지…}
“정말요?”

 

소년이 반색을 하며 묻자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나무 뒤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며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의 눈에 들어온 정체불명의 생명체의 모습은 눈은 마치 어두운 밤의 반딧불이처럼 빛났으며 온몸에는 비단같이 곱고 길게 나있는 흰 털이 온몸의 덮여 범의 형체를 하고 있는데도 마치 사람으로 착각 하게 끔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흰 범의 스산한 기운에 이내 정신을 차린 소년은 조심스레 뒷걸음질 치며 나무의 등을 기대고는 경계하며 말을 이었다.

 

“저… 다시 생각 해보니까 그건 제가 스스로 찾아 봐야 할 것 같아요…”

 

소년이 말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흰 범에게서 들려오는 쇠를 긁는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주변에 울려 퍼졌다.

 

{흐흐흐흐}

 

흰 범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억지로 흉내 내는 것같이 매우 어색하고 섬뜩했다. 소년은 이내 뒤돌아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돌아서는 소년의 등가에 섬뜩한 기운이 다가왔다.

 

{인간은 오랜만이구나!}

 

흰 범은 혼잣말을 하고는 이내 순식간의 소년에게 뛰어 올랐다.

 

순식간의 소년의 눈앞에 다가오는 흰 범의 날카롭고 거대한 앞발을 보고는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림자를 펼쳐 방어했다.

 

-으아아아아-

 

소년에게서 펼쳐진 그림자는 흰 범의 온몸을 칭칭 감으며 방해하였다. 흰 범은 이내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카아아앙-

 

흰 범이 그림자의 막혀 몸부림치고 있을 때 소년은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년의 비명이 이내 산속에 울려 퍼지며 소년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곧이어 흰 범도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에 붙은 그림자를 떨쳐내고는 소년을 뒤쫓기 시작했다.

 


한편 소년이 영산을 헤메고 있을 때 또 다른 도깨비의 출현이 이매망량 들의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느 양반 집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크게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잔치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넓은 마당을 다 메울 정도로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기고 있던 때 대문으로 어린 아이 하나가 대뜸 들어왔다. 아이의 외형은 낡고 다 찢어져 가는 옷을 입고는 흙투성이에 머리는 더벅머리처럼 산발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모습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

 

“이게 뉘집 종이오?”

 

한 남자가 아이를 보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주인이나 손님들 이나 다같이 모른다고 하여 사람을 시켜 아이에게 물었으나 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보고 있던 한 남자가 다가와 아이에게 호통을 쳤다.

 

“어허! 어서 말하지 못할까! 네는 어느 집 종이더냐?”

 

남자의 호통에도 여전히 아이는 말이 없었다. 어느덧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몰리며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노하기 시작했다.

 

"어허~ 어서 나가지 못할까!"

사람들은 팔을 내저으며 아이를 나가도록 하였으나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사람을 시켜 아이를 쫓아내도록 시키자 장정 여러 명이 몰려왔다.

몰려온 장정들은 아이를 잡아끌어 내쫓으려 하였으나 아이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4 명의 건장한 체격의 장정들이 고작 아이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곧이어 사람들이 수근 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걸 보던 손님 중의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저것도 사람일 텐데 어찌 움직이지 않을 리가 있겠소?”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잔칫집의 주인은 장정들에게 소리쳤다.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이놈을 당장 쫓아 내거라!”

 

주인의 말에 장정들은 몽둥이를 들고 와 아이를 위협하였다.

 

“셋 셀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이 몽둥이로 너를 매우 칠 것이다.”
“하나…둘…셋…”

 

남자가 셋을 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움직이지 않자 장정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퍽퍽-

 

벽력 과도 같은 소리가 마당에 울려 펴지며 매질이 이어졌다.

 

 

멧돼지도 때려잡을 것 같은 매서운 매질이었지만 아이는 눈 하나도 꿈쩍 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놀라운 광경은 경외심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그제서야 아이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챈 사람들은 아이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구나…”
“귀신이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아이의 시선이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아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사람은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아이가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아이에게 행한 악행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나 둘씩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과도 같은 곡소리가 잔칫집을 가득 채워나갔다.

 

“죄송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마침내 잔칫집의 모든 사람들의 통곡이 마당에 울려 퍼지자 이내 아이는 갑자기 빙긋이 비웃음을 띄우고는 대문 밖을 나섰다. 아이가 나가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황급히 잔치를 파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져 돌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오늘 있었던 일을 두고 속으로 생각했다.

 

“살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다음날 자신들에게 어떤 재앙이 닥쳐올지 말이다.

 

다음날

 

잔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물론 잔치를 벌였던 잔칫집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대상은 아이를 몽둥이로 내리쳤던 장정들은 물론, 아이에게 온갖 삿대질과 욕설, 비난을 했던 잔치에 갔던 모든 사람들이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머리가 으깨진 채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죽은 사람들의 정확한 사인은 모르겠으나 마을 사람들은 이 짓이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잔칫집에 왔던 어린 아이.

 

그날 부터 사람들은 그 아이를 머리를 짓누르는 귀신 이라 하여 두억시니 라고 칭하며 사람들은 물론 요괴들 사이에서도 두억시니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