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년 28화 [각자의 길 4]
그림자 소년 28화 [각자의 길 4]
구미호
꼬리가 아홉이 달린 여우 요괴로 <현중기>에 따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여우는 50년 을 넘기면 여성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100 세가 되면 미녀나 무녀로 변신 하고, 또는 남자로 변신하여 여성과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또한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을 알고 있으면 사람을 홀린다. 1000 세가 되면 하늘과 통하게 되어 여우의 최고 단계인 천호 (天狐)가 된다.
구미호와 소년이 말하는 사이 마침내 동굴 입구에 다다른 불가사리가 일행들을 향해 화염을 내뿜었다.
화염은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일행들을 향해 다가 왔다.
{내 뒤로 피해!}
구미호는 자신의 아홉 꼬리에 불꽃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화염을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화르르륵-
불가사리의 화염과 구미호의 불꽃이 맞닿자 엄청난 고열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으로 인해 그들이 있던 동굴 천장이 바닥으로 폭삭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무너져 내린 동굴 속에서 소년은 황급히 구미호를 찾기 시작했다.
“여우 님 어디 계세요!”
소년은 폭발에 휘말려 바위 밑에 깔린 구미호를 가까스로 찾아 내었다. 소년은 바위 밑에 깔린 구미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으세요? 여우님?”
구미호의 상태는 위태로워 보였다. 구미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소년에게 대꾸했다.
{여우 구슬의 금이 갔어…}
“여우 구슬이요?”
그때였다. 이내 불가사리가 동굴 안으로 거대한 몸을 이끌며 그들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가 다가 올 때 마다 땅이 격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그 와중에도 소년은 다급히 바위를 힘껏 밀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소년의 몸으로는 거대한 바위를 밀어 낼 수는 없었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소년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불가사리와 자신을 구하다 바위 밑에 깔려 괴로워하는 구미호를 두고 소년은 생각했다.
‘도망가야 되나.. 그렇지만 여우님은 나를 구해 주려다 다친건데’
마침내 그들에게 다가온 불가사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커다란 입에서 화염을 머금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동굴을 울리는 괴성을 내지르며 불가사리 입안에 있는 화염! 그것을 보던 구미호가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
그런 소년을 보고는 구미호는 도망치라고 말했지만 소년은 자신을 구해 준 구미호를 두고는 차마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소년이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하는 사이 곧이어 불가사리의 화염이 일행을 덮치는 순간… 소년의 머리 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내가 나서야 되겠어?}
순식간에 소년의 그림자가 주변 일대를 덮어 버리며 불가사리의 화염 역시 같이 삼켜 버렸다. 주변은 화염 대신 스산한 기운으로 뒤덮혔다.
당황한 불가사리는 이내 다시 화염을 일으키려고 입안에 불을 머금기 시작했다.
{소용 없다니까!}
소년의 스산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불가사리의 눈에는 소년의 주위에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그것은 스산한 기운을 풍겨대며 자신을 압도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불가사리는 공격을 멈추고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지만 소년의 기백은 스산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불가사리는 소년의 힘을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자신을 경계하는 불가사리를 보며 소년이 말했다.
{그렇지! 말 잘 듣네!}
마치 개를 부르듯이 자신을 부르는 소년의 도발을 듣자, 불가사리가 다시 괴성을 지르며 소년에게 달려 들기 시작했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 육중한 불가사리 몸체가 바닥을 울리기 시작했다. 불가사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소년에게 한 마리의 야수처럼 달려갔다.
반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소년은 여유로웠다.
{히히히히 육탄전이야? 그럼… 흑랑(黑狼)}
소년의 말과 함께 그의 주변에서 그림자가 일렁였다. 곧이어 그림자 늑대들이 불가사리를 향해 달려 들기 시작했다. 그림자 늑대들의 기운은 평소 소년이 소환하던 흑랑들 보다도 더욱 매서웠다.
-쾅쾅쾅쾅-
거대한 불가사리를 뒤덮은 수백의 그림자 늑대들이 불가사리의 몸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물어 뜯기 시작했다. 불가사리는 벽을 밀치며 그림자 늑대들을 떼어 내려 발버둥 쳤다.
소년이 그 모습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오… 튼튼한데? 그럼 이건 어때?}
-스릉-
이번에는 소년에 몸에서 거대한 반달 형태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소년에게서 뻗어 나온 반달의 그림자는 검은 파장을 일으키며 곧장 불가사리를 향해 쏘아졌다.
순간 동굴 안이 다시 암흑처럼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불가사리의 상반신이 잘려 나갔다.
-퍼억-
육중한 불가사리의 몸통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몸통이 반으로 나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사리는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여전히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워-
괴로워하는 불가사리를 보며 소년은 신기한지 다시 한번 연신 몸에서 그림자를 일렁였다.
-스릉-
-스릉-
-스릉-
소년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반달 형체의 그림자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괴로워 하는 불가사리의 상반신을 2등분 4등분으로 가르었다. 그렇지만 불가사리는 여전히 살아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진짜 안 죽네? 그럼 어쩔 수 없이… 잡아 먹어야지!}
곧이어 섬뜩할 정도의 스산함이 주변을 감싸며 소년의 그림자가 주변을 암전으로 뒤덮었다.
…
{아가… 아가… 일어 나렴}
구미호의 목소리가 들려 오며 소년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으으으…”
정신을 차린 소년은 여전히 바위 밑에 깔려 힘겨워 하는 구미호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갔다.
“여우 님 괜찮으세요?”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구미호에게 말하자 구미호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내가 천호의 경지만 되었어도 이런 수모는 겪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틀린 것 같구나}
“무슨 그런 소리를 하셔요! 힘을 내세요 제가 어떻게든 살려 드릴게요… 죽지 마세요!”
울고 불며 목 놓아 외치는 소년을 뒤로하고 구미호는 체념하듯 소년에게 말했다.
{훗… 착하구나… 너는 정말 착한 아이야… 그것도 모르고 미안하구나…}
“그게 무슨 소리세요?”
{사실은 원래 너의 정기를 흡수할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다 죽어 가는 꼴이 되었으니… 하늘에서 내게 천벌을 내린 게지…}
구미호는 사실 소년에게 계획적으로 접근 한 것이었다. 소년을 노리는 다른 요괴들로 부터 소년을 지켜 주는 척 믿음을 사, 나중에는 천천히 소년을 홀려 소년이 방심하는 틈을 타 정기를 흡수할 계획을 가지고 말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구미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염원을 말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너를 지켜 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인간 세계에 있는 너만 할 때 버리고 온 내 아이가 생각 나는구나…}
그 모습을 보던 소년은 바닥에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죽긴 왜 죽어요… 제가 살려 낼게요… 죽지 마세요!”
{염치 없지만 부탁하나 해도 되겠니? 혹여 라도 그 아이를 만난다면 미안하다고 전해 주겠니… 이름은 길달 이라고 한다… 여우 요괴도 아닌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지…부탁한다.}
구미호는 그리고는 청록 빛을 띠고 있는 자신의 여우 구슬을 내뱉으며 소년에게 건넸다. 여우 구슬은 빗금이 가 금방 이라도 깨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소년은 여우 구슬을 조심스레 받아 들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러자 소년의 머릿속에 해태가 한 말이 문뜩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심 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멀구 나무 잎사귀를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멀구 나무 잎사귀는 영험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잎사귀 이니라! 그 효능이 어찌나 영험한지 그 잎사귀를 빻아 상처에 바르면 씻은 듯이 낫게 되고 몸은 방금 씻은 듯이 청결하게 해주는 …}
해태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소년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구미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여우 구슬만 회복 된다면 살아 나실 수 있는 건가요?”
구미호는 아까보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미호는 가파른 숨을 내쉬며 소년에게 물었다.
{무슨 수로…?}
“기다려 보세요!”
소년은 이내 주변에 있는 돌을 꺼내 가지고 있는 모든 멀구 나무 잎사귀를 빻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곧이어 멀구 나무 진액이 나오자 소년은 그것을 여우 구슬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소용없어 아가… 그 구슬을 붙이는 것은…}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년이 진액을 바르고 잠시 후 여우 구슬은 다시 희미했던 청록 빛에서 진하고 맑은 청록빛을 띄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멀구 나무 잎사귀를 사용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 어떻게…}
자신의 몸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구미호는 놀라운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실 해태님이 그러는데 멀구 나무 잎사귀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더라고요”
{해태? 갑자기 그게 무슨…}
그때 였다. 그들의 주변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콰르르르릉-
안개는 곧 구름의 형상을 띄우더니 구름 속에서 번개를 동반한 무언가 그들 앞에 나타나 소리쳤다.
{네 이놈! 내가 분명 멀구 나무 잎사귀를 사용하면 안된다 그렇게 일렀거늘! 기어코 사용했구나! 각오는 되어 있겠지!}
구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해태는 우뢰와 같은 음성을 내뱉으며 소년을 크게 꾸짖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해태에게 빌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내 말을 거역한 것이냐! 그것도 너를 헤하려 한 요괴를 위해서…}
“그…그렇지만 구해 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사람이 할 도리가…
{너를 죽이려고 한 자인데도 말이냐?}
“네… 설령 그 사람이 저를 헤하려 한 요괴라 해도 말입니다.”
소년은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대한 신념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소년을 보며 해태가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이 일로 인해 너는 시험은 물론 너의 목숨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해태의 목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치며 다시 한번 소년을 압도했다.
그러자 소년은 이내 마음을 다 잡으며 말을 이었다.
“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제 죽어라!}
해태는 자신의 앞발을 치켜 들며 소년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보였다.
소년은 이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모두들 미안해요… 어머니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스님 매번 걱정만 끼치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요괴 들아 미안해…’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에게 못 다한 말들을 떠 올리면서 말이다.
해태의 거대한 앞발이 이내 소년을 향해 내려 오자 소년은 그동안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죽는 건가…’
모든 것을 포기한 소년의 귓가에 해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격~}
{…}
소년의 두 동공의 지진이 일어나며 소년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런 소년의 머리를 해태가 쓰다듬으며 말했다.
{합격이느니라!}
“네? 그게 무슨…”
소년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